안기부 X파일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불법도청의 핵심인물로 떠오른 오정소 전 안기부 1차장의 입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씨는 1994년에 미림팀 재구성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 등에 의해 지목된 인물이다. 오씨가 1994년 초 인천지부장으로 있다 대공정책실장으로 부임한 뒤 미림팀 재건을 주도했다는 것이 그의 보좌관을 지낸 김씨의 주장이다. 검찰은 현재 도청자료의 외부유출, 회수 및 재활용 여부 등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안기부 도청조직 `미림' 전 팀장 공운영씨가 4일로 예정된 구속전 피의자 신문을 거쳐 구속되면 다음주부터는 도청의 실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우선 공씨를 상대로 1994년 미림팀 재건 이후 1997년까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식으로 도청했는지를 조사함으로써 미림팀의 활동실상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면 오씨를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 관계자는 "아직 오씨를 조사할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 사전 작업이 좀 더 남아있다"면서도 "과거 도청행위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자체 조사중이지만 우리도 필요한 부분은 해야할 것"이라고 말해 공씨 소환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검찰은 오씨가 출석하면 자신의 경복고ㆍ고려대 동문이자 김영삼 정부의 실세였던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 등에게 도청내용을 직보했다는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림팀이 김영삼 정부시절 누구의 지시에 의해 주도적으로 재건됐고, 생산된 도청자료들이 어떤 식으로 보고되고 활용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림팀과 정권 수뇌부 사이에 자리했던 오씨의 입이 핵심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청자료 활용 등을 입증할 만한 정황이나 증거가 거의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씨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우회로 개척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아예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달리 어쩔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오씨는 국정원 조사에서도 "책임지겠다"는 말만 할 뿐 도청행위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검찰에 출석하더라도 수사에 필요한 핵심 분야는 언급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오씨가 불법도청을 주도했더라도 그 부분에 대한 통신비밀보호법 등의 공소시효가 완성됐기 때문에 그를 피의자로 삼아 처벌을 전제로 한 수사를 벌일 수 없을 것이라는 부분도 오씨의 입을 열게하는 데 장애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오씨는 공교롭게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수사중인 `행담도 사건'과 관련, 김재복(구속) 행담도개발㈜ 대표를 경남기업과 문정인 전 동북아위원장에게 각각 소개해 준 일로 수사선상에 올라 연일 조사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검찰은 오씨가 김씨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지만 사인(私人)간의 금품거래이고, 대가성 입증도 쉽지 않기 때문에 별개 사건을 이용해 `압박'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도청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 및 공개 여부를 두고 정치권과 여론이 들끓고 있는 터에 공안부에서 수사를 진행중인 검찰로서는 김영삼 정부시절 도청의 실체 규명까지 해내야 1차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상황이다. 그런 만큼 검찰은 오씨의 말문을 트기 위해 합법적인 모든 방안을 동원한다는 계획이어서 앞으로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