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10년] GS홈쇼핑 이유진쇼핑호스트 "첫매진 사인받고 눈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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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송이 프라이팬이거든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GS홈쇼핑 제작 스튜디오 한쪽의 휴게실.쇼핑호스트 이유진씨(36)가 들어서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방안에 진동을 한다.
오늘 내보낼 방송 중간중간에 쇼핑호스트가 직접 새우소금구이,계란프라이,야채볶음 등을 시연하는 순서가 있어 오전 내내 집에서 연습에 열중했다는 것.
"10년 전 홈쇼핑이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스튜디오에서 음식을 지지고 볶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죠"라며 웃는 이유진씨.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눈가에 살짝 주름이 엿보인다.
스물여섯 천방지축 디자이너 아가씨가 매출액에 울고 웃는 쇼핑호스트로 10년을 보내는 동안 어느덧 30대 중반의 주부에 애 엄마까지 됐다.
패션 전공으로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디자이너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신문에서 '쇼핑호스트'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단다.
"쇼핑호스트가 뭔지는 몰랐고요,'직무소개'란에 '미국에서는 매우 인기 있는 전문방송인'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방송'에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이씨는 주저없이 지원을 했고,당시 홈쇼핑방송 개국을 돕기 위해 우리나라에 와 있던 외국인 컨설턴트가 실시한 면접을 통과,대한민국 최초의 '쇼핑호스트'가 됐다.
그때만 해도 일반인에게 생소했던 '쇼핑호스트'라는 직업이 지금은 직업 연감에까지 등록됐다.
이씨가 처음으로 생방송에서 판 물건은 영화 '그랑블루'의 포스터.물론 단 한 개도 팔리지 않았다.
"딱 7분이었어요.
7분 동안 업체에서 준 자료를 가지고 요약한 내용을 줄줄 외우고 나왔는데 PD가 주문전화가 한 통도 없다는거예요." 이렇게 매일 '물 먹던' 처음 몇 달 동안은 '방송인이라면서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되뇌며 화장실에서 펑펑 울기도 했단다.
이씨의 첫 대박은 '자동차 코팅 세트'.스튜디오에서 멀뚱히 서서 진행하는 방식을 탈피,야외로 나가 직접 왁스로 차도 닦아보고,광은 잘 나는지 솔로 문질러 보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방송 중간중간에 보여줬다.
지금은 홈쇼핑 방송에서 일반적인 형태가 된 '제품 시연'을 최초로 시도해 본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대보조가 스케치북에 '매진'이라고 써서 흔드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고객들에게 재고가 없다고 알려야 되는데…." PD가 얼른 자막을 넣어서 위기는 넘겼지만 이씨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듯 다시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거요? 방송 한 번에 몇억원어치 주문이 들어온다는 거,그런데도 방송할 땐 예전보다 더 딴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거.왜냐하면 같은 주부 입장에서 '이게 꼭 필요한 물건인지'를 자꾸 생각하게 되거든요.
무조건 '생활의 필수품'이라고 외쳐야 될 텐데 말이죠."
당장의 사탕발림으로 물건 하나를 고객에게 떠넘기는 것보다 좋은 상품을 골라내고,고객의 판단을 돕도록 장단점을 꼼꼼히 알려주는 것이 '쇼핑호스트'가 회사에 할 수 있는 더 큰 기여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는 듯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