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돈이 넘친다고 하는데 우리 회사는 정반대입니다. 거래처에서 돈이 안 들어오는데 자금사정이 좋을 리가 있나요. 대부분 어음결제인 데다 모두들 만기일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안달이에요." 중소 전선업체의 K사장은 요즘 자금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수금이 안 되니까 운영자금이 모자라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게 되니까 쓸데없이 이자비용만 더 나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 회사만이 아니다. 국내 기업 10개 중 3∼4곳은 현재 자금사정이 지난해보다 안 좋다고 응답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벌인 '기업 자금사정과 금융시장 전망 조사'에서다. 28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의 33.7%는 현재 자금사정이 '지난해보다 매우 어렵다(5.7%)'거나 '어렵다(28.0%)'고 응답했다. 작년과 비슷하다는 응답이 46.3%로 가장 많았다. 반면 좋아졌거나 매우 좋아졌다는 응답은 20%에 그쳤다. 자금사정이 어렵다고 답한 기업들은 주된 이유로 '매출 감소(53.5%)'와 '자금회전 부진(23.8%)''금융권 대출애로(5.9%)' 등을 꼽았다. 대구의 염색업체 A사장은 "내수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지난해보다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며 "은행들도 섬유사업이 사양산업이라는 핑계로 대출을 꺼려 직원들 월급주기도 빠듯한 실정"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향후 자금사정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전망이 엇갈렸다. 중소기업은 '어려울 것(35.3%)'이라는 응답이 '좋을 것(22.2%)'이라는 응답보다 많았다. 반면 대기업은 '좋을 것(41.2%)'이라고 전망한 응답이 '어려울 것(23.6%)'이라는 응답보다 1.7배가량 높게 나타나 자금사정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자금사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기업들의 31.8%는 자금사정의 호전 시기에 대해 '기약없음'이라고 응답했다. 2006년 하반기가 26.6%로 뒤를 이었고 2007년(21.3%),2006년 상반기(18.1%) 등의 순이었다. 한편 기업들은 자금조달의 대부분을 은행 등 금융권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금조달방안을 묻는 질문에 89.5%의 기업이 금융권 대출을 꼽았고 회사채 발행(1.6%),주식발행(1.6%) 등은 정책자금(5.7%)에 비해서도 낮았다. 기업들은 자금난 해소를 위한 정책과제로 '정책자금 지원 확대(46.3%)'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대출금리 인하(26.3%)'와 '신용대출 확대(15.1%)''직접금융 활성화(7.0%)' 등이라고 답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