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부터 1998년초까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전담부서인 '미림'에서 수집한 도청 자료의 최종 수요자는 누구일까. 미림팀의 전 핵심관계자인 김기삼씨를 비롯한 전직 안기부 직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도청 자료는 내부 요직 3~4단계를 거쳐 대통령과 청와대 정권 실세들에게 최종적으로 보고됐던 것으로 보인다. 정ㆍ관ㆍ재계 인사들이 사적으로 나눈 대화를 도청하는 것이 곧 정치사찰의 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정권 실세들이 도청정보를 애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정보원법에 규정된 국정원(옛 안기부)의 지위 규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국가정보원법 제2조는 "국정원은 대통령 소속하에 두며 대통령의 지시ㆍ감독을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어 대통령이 '정치관련 정보'를 원할 경우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안기부 출신 A씨는 "미림팀의 도청자료는 최종적으로 청와대로 보고된 것으로 보면 된다"며 "도청은 곧 정치사찰의 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정치사찰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는 지시가 있자 미림팀을 해체했다"며 "최고 실세들의 정보 갈증을 해소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도청이 자행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직 안기부 직원 김기삼씨는 MBC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1994년 초 O씨가 인천지부장에서 대공정책실장으로 부임하면서 1년간 활동이 거의 없던 미림팀을 재조직했다"며 "당시에는 안기부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청와대에 직접 보고하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김씨의 이런 발언은 미림팀의 도청에 청와대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또 SBS와 회견에서 당시 수집된 도청 정보는 안기부 대공정책실장 등 극소수 고위간부와 청와대 핵심실세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김씨는 "P모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경질된 것은 미림보고서에 걸렸기 때문"이라며 "고등학교 동창생과 밥을 먹다가 대통령의 아들인 K씨가 청와대에 자기 사람을 심는 등 전횡이 심하다는 얘기를 했다가 전격적으로 잘렸다"고 말했다. 미림팀장을 지낸 공 모씨는 "YS정부 당시 청와대 부속실장이었던 J씨를 자르려고 내가 외부에 부정축재 혐의를 흘렸다"고 강조하는 등 미림보고서가 정권실세에게 전달됐음을 우회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도청에서부터 최종 보고까지의 계선을 어느 정도 추론해볼 수 있다. 한정식집이나 단골 술집에 속칭 '망원'(정보수집원)을 심어 예약 정보를 미리 입수한 뒤 미리 도청기를 설치하고 옆방에서 엿듣는 방식으로 수집된 정보는 옛 안기부 '정치사찰' 업무의 사령탑격인 대공정책실장에게 녹취록 형태로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 기획판단국장-차장-부장의 계선을 통해 보고가 올라가고 부장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형식으로 정보가 이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공정책실장은 도청정보의 가치를 따져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상관인 기획판단국장-차장-부장 라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청와대에 직보한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기삼씨는 이와 관련,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도청 내용은 L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영삼 대통령의 장남 K씨에게 즉시 보고됐다"며 "특히 보고서는 K씨에게 큰 칼이 됐다"고 말해 직보 형식의 보고가 많았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김기삼씨가 지목한 당사자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관련 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있어 도청자료를 누가 받아보고 이를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는지는 쉽게 규명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