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세계 일류기업 대열에 올라선 삼성전자의 사장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의 최장수 장관인 그가 지난주 중국 IT(정보기술)산업을 시찰했다. 진 장관의 눈에 비친 중국의 IT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가고 있었을까. 중국의 실리콘밸리 중관춘을 둘러본다는 진 장관 일행을 따라나섰다. 기업의 발자취가 중국 IT의 변천사로 평가받고 있는 롄샹에 도착했다. 진 장관으로선 세 번째 방문이었다. 1999년엔 반도체를 팔기 위해 찾았고,2001년엔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당시 삼성 사장이던 그에게 롄샹은 고객이자 협력 파트너였던 셈이다. 3년 전에 그를 맞았던 양위안칭(楊元慶) 회장은 없었다. 대신 나온 바이후이민(白慧敏) 부총재(부사장)는 "양 회장은 IBM PC 인수 이후 통합작업을 위해 뉴욕에 가 있다"고 전했다. 20여년 전 중관춘의 허름한 실험실에서 시작한 중국의 벤처는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 3위 PC업체로 변신해 있었다. '매년 매일 진보 중'이라는 구호가 내걸린 회의실에서 회사 소개가 이뤄졌다. 바이 부총재는 "IBM PC사업 인수로 2000건의 특허가 함께 들어왔다"고 말했다. "PC사업은 이익률이 낮고 경쟁도 치열한데 IBM PC사업을 인수한 이유가 뭔가"라는 진 장관의 물음에 "통신 발전으로 PC의 응용모델이 다양화되고 있어 상당한 발전공간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바이 부총재는 이어 자사가 주도한 홈네트워크 기술인 IGRS의 중국 표준 채택을 사례로 소개했다. 그날 중국 신문에는 롄샹의 또 다른 부총재가 한국기업들을 IGRS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날 한국으로 날아갔다는 기사가 실렸다. 중국언론은 이를 세계표준으로 채택되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해석했다. 이어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이 주도하는 Itop-home과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 인텔이 내세우는 기술 정도가 세계 홈네트워크 표준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었다. 롄샹의 행보는 "4류기업은 노동력을,3류기업은 제품을,2류기업은 기술을,일류기업은 권리를,초일류기업은 표준을 판다"(가전 부품업체 안차이그룹 리류언 회장)는 인식이 중국에 확산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연구개발,중국은 제조라는 분업관계가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든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진 장관 일행에게 중관춘 관계자들은 "오라클이 해외에서 세운 최대 연구소와 IBM의 아시아 최대 연구소도 자리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중관춘뿐만 아니다. 중국이 기술을 빨아들이기 위해 유치한 다국적기업의 연구소는 이미 600개를 넘었다. 다국적 기업에 채용된 중국인 연구원은 훗날 중국 기술혁신의 선두주자로 나설 게 뻔하다. 진 장관은 중관춘 시찰 뒤 "롄샹이 그동안 삼성보다 못했지만 IBM PC사업 인수로 달라질 것"이라며 "중국이 우리 뒤를 바로 따라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진 장관이 정통부 관리들에게 "매머드 옆에서 살아남으려면 차별화해야 한다"며 스피드경영을 수시로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존의 키는 결국 '속도'에 달려 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속도를 내고 있는지. 오광진 베이징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