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위를 헤엄쳐 다니는 백조는 보기에 우아하지요.


그러나 수면 밑을 들여다 보면 잠시도 쉬지 않고 발을 움직이잖아요.


바이어도 마찬가집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숨어 있습니다." 심원보 롯데백화점 과장은 "바이어는 호수 위의 백조처럼 겉보기에 멋있어 보이지만 남모르는 고달픔이 있다"고 말한다.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조달해야 하는 부담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는 것.그래서 바이어는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인다.


자신의 권한과 책임 아래 상품을 사고 매장을 꾸미고 판촉하고 재고를 처리한다.


기업 구성원이지만 프리랜서적 특성이 있다.


배선영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 과장.일본과 미국에서 패션을 전공한 그는 연중 5개월은 해외에서 보낸다.


해외명품 본사들을 접촉하고 유행 브랜드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10년간 이 일에 매달리다보니 런던 파리 밀라노 도쿄 뉴욕 등 5개 도시 패션가는 눈 감고도 찾아갈 정도가 됐다.


"명품 본사들과 접촉할 때는 내가 한국을 대표한다는 긍지를 갖고 일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매달리거나 하진 않아요." 그는 명품도 한·중·일 세 나라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다며 나름의 명품업체 협상관을 보인다.


이성찬 롯데마트 수산팀 과장은 10년째 바닷고기를 다루고 있다.


수산대를 나온 후 3년 동안 원양어선을 타기도 했다.


그가 다루는 생선은 고등어 갈치 오징어 등 160가지.하지만 그는 아직 시세변동만큼은 자신이 없다.


"바닷속 일은 용왕님밖에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지난달 초 구로점 오픈 때도 오징어 4마리를 1980원에 팔겠다고 미리 홍보를 했는데 오픈 당일 강원도 거진항 시세가 마리당 450원이었어요.


이럴 때 수산물 바이어들은 대박이 난다고 말합니다."


지연진 갤러리아백화점 상품1팀장.19년간 숙녀복 바이어를 지낸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그는 "숙녀복 바이어를 하면 1년에 집 한 채씩 떨어진다는 속설은 70,80년대의 전설"이라면서 "번쩍거리는 백화점 안에서 일하지만 집은 2시간 걸리는 수도권 도시에 있는 게 숙녀복 바이어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푸념했다.


끊임없이 변하는 유행을 좇기 위해 관련 업계 사람들을 수시로 만나야 하는 게 패션 바이어의 일상이다.


시간도,돈도 늘 부족하게 마련.최근 남자 바이어와 여자 매니저의 사내 결혼이 유행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할 수 있어서다.


사생활이 없다는 건 바이어들의 한결같은 고민이다.


곧바로 퇴근해도 집에 도착하면 밤 11시를 넘기기 일쑤고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다음날 새벽에 귀가하게 된다.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일어나 곧바로 지방출장을 가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성찬 과장의 얘기."보통 어선들은 위성전화를 가지고 있어요.


좋은 물건을 가지고 항구로 들어올 경우 선장이 미리 위성전화로 알려줍니다.


이럴 때는 무조건 현지로 달려가야 좋은 물건을 선점할 수 있습니다." '매출은 인격'이란 유명한 명제도 바이어 세계에서 나왔다.


매출에 살고,매출에 죽는 '매생매사'는 바이어의 철칙이다.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김보윤 롯데마트 스포츠팀 과장.등산,낚시,골프,레저용품 담당이다.


학창시절 산악부에서 히말라야 원정을 준비할 정도로 산을 좋아해 이 일을 선택했다.


그런 그도 작년 한 해는 고개를 숙이며 지냈다.


갑자기 인라인 스케이트 바람이 퇴조하면서 매출이 전년 대비 50% 마이너스로 추락한 것."승승장구하던 인라인 스케이트 인기가 왜 하필 지금 꺼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더라고요.


물류창고에 쌓아 놓은 재고를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하늘만 원망했죠."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