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다시 벤처투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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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LG KT 등 대기업들이 계열 금융사를 통해 벤처 펀드를 조성하는 등 간접투자 형태로 벤처기업 투자에 나섰다. 벤처 거품이 꺼진 2002년 이후 회사 차원에서 벤처 투자를 직·간접적으로 줄여오던 이들 기업이 다시 투자에 나서는 것은 최근 정부의 벤처 활성화 대책과 주식시장 회복으로 투자 여건이 개선된 데다 정부의 창업투자회사에 대한 경영지배 허용 방침도 한몫 한 것으로 분석된다.
13일 벤처캐피털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바이오 및 영화 분야 벤처기업 투자를 추진 중이다. SK케미칼 등은 인공관절 인공뼈 인공장기 등 바이오 기능성 신소재 분야 우수 벤처기업 위주로 투자하는 300억원 규모의 '바이오 펀드' 조성을 추진 중이다. 계열 창업투자회사인 인터베스트가 운용을 맡는 이 펀드는 10년간 운용되며 앞으로 3∼4년 동안 본격적인 투자에 들어갈 전망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수익성 부담이 큰 기존 일반 벤처펀드로는 장시간 소요되는 바이오 산업에 정상적으로 투자하기 쉽지 않다"며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공공재적 투자를 하기에는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이 제격"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서비스 본격화에 맞춰 창투사인 IMM인베스트먼트가 운용을 맡을 400억원 규모의 '영상제작 펀드'에 30%인 120억원가량을 출자할 예정이다. 영상제작 펀드는 영화제작사나 유통사뿐만 아니라 지상파 DMB에 제공할 영화 콘텐츠 관련 벤처기업들에도 투자된다.
LG그룹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벤처기업 초기 발굴을 위한 '벤처 인큐베이팅' 역할에 적극 나섰다. 계열 창투사인 LG벤처투자를 통해 3년 이내 창업 초기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300억원 규모의 '창업초기 투자조합'을 조성할 계획이다.
LG그룹은 이 같은 간접 투자를 통해 벤처기업에 경영 기법과 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잠재력 있는 벤처기업을 미리 발굴해 안정적인 협력업체를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KT는 자회사인 KTF와 KTH 등을 통해 차세대 수익모델인 영상 및 음원 분야 벤처 투자를 추진 중이다. KTF는 이를 위해 미국계 창투사인 보스톤창투가 조성 중인 300억원 규모의 '보스톤영상전문 투자조합'에 출자할 예정이다.
유망한 영화 드라마를 선정·제작해 이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고 향후 영화 수익을 배분하는 한편 유망 투자대상에는 메인 투자자로 참여해 판매권을 확보하는 등 부수적인 효과도 노리고 있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벤처거품 시절 대기업들이 앞다퉈 그룹 내 벤처투자팀을 만들어 직접 투자하다 거품이 꺼지면서 큰 손실을 경험했다"며 "신규 수익모델 창출의 필요성과 위험분산 차원에서 창투사 등 금융사를 통한 벤처 투자에 나서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최근 정부의 창투사에 대한 경영지배 허용 방침도 대기업 투자 '러시'에 한몫 한 것으로 분석된다. 단순 자본 이득뿐만 아니라 대기업이 축적한 노하우와 자금력에 유망 벤처기업의 신규 아이템을 접목시켜 대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