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뱅킹 계좌로 공금을 횡령하는 과정에서 해당 은행이 본인 확인을 하지 않았더라도 은행에는 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박정헌 부장판사)는 5일 의류회사인 E사가 "인터넷뱅킹 계좌를 개설할 때 본인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 거액의 피해를 봤다"며 외환은행과 대성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낸 53억여원의 예금반환 소송에서 "은행과 회계법인에 손해배상 책임이 전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본인이 아닌 대리인이 인터넷뱅킹 계약을 체결할 때 은행에 반드시 본인 대면 및 확인절차를 거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사실상 가족회사나 마찬가지인 원고가 10여년간 한 직원에게 자금관리를 맡겨 관리감독 책임을 소홀히 한 면이 더 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회계법인에 대해서도 "외부감사는 부정사항 방지 및 발견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자금관리 직원이 3년이 넘는 기간에 어음 및 당좌수표를 위조,발행하고 횡령한 것을 경영진이 아무도 알지 못한 책임이 훨씬 무겁다"고 설명했다. E사에서 자금관리를 담당하던 이모씨는 지난 2001년 대표이사의 인감을 이용해 인터넷뱅킹 계좌를 개설,모두 223회에 걸쳐 53억여원에 이르는 회사 돈을 빼내 선물 옵션 등에 투자했다. E사는 작년 11월 은행과 회계법인이 감독 및 감시의 의무를 소홀히 해 거액의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