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만 하면 또 터지고, 정말 전역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19일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GP에서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숨진 사고에 대한 육군의 브리핑에 이어 합동참모본부가 북한군 1명이 최전방 철책선을 넘어 월남한 사건 경위를 설명하는 장면을 지켜보던 군의 한 관계자는 군복을 입고 있는 자신이 밉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루 건너다시피 터지는 어이없는 대형사고에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고 하소연을 한 것이다. 그의 말은 요즘 '군심'(軍心)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동안 발생한 대형 군관련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인재'(人災)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군 기강이 땅에 떨어졌다는 비난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군 관계자들은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군 관계자는 "과거 군에서 발생한 사고를 되짚어 보면 신기하게도 같은 유형의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과거의 거울을 통해 미래의 사고를 충분히 예견하고 예방할 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한 현실이 답답하다"고 털어 놓았다. 실제로 1984년 6월 26일 강원도 동해안 육군 모부대서 병사가 고참 폭력을 견디다 못해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 3발을 던져 12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당한 사건은 이번 사건과 비슷하다. 지난 해 10월 철원군 최전방 3중철책 절단과 올 1월 육군 훈련소 인분사건은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대표적인 군 관련 사고이며, 지난 13일 북한군 철책 월남과 최전방 GP 총기난사 사건도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군기강 해이 사례들이다. 특히 인민군복 차림인 북한군 초급병사 1명이 최전방 3중철책을 지나 월남해 16일까지 꼬박 나흘동안 전방지역을 배회하다 17일 오전 주민의 신고로 붙잡힐 때까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은 군의 검문검색체계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내 주었다. 또 이 병사가 3중철책 가운데 북측 철책과 중간 철책은 각각 하단부에 나있는 물길에 터널을 내고 철문틈을 이용해 통과하고 마지막 남쪽 철책은 지주(철기둥)를 타고 올라 뛰어넘었는데도 경계병에게 발각되지 않은 것은 최전방 경계감시체계에 '구멍'이 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군은 지난 해 3중철책 절단사고 후 근무자들의 근무형태를 바꾸고 북측 지역 관측이 쉽지 않은 곳에는 소초를 추가로 설치해 경계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8개월여만에 같은 장소에서 불과 5∼6km 가량 떨어진 곳의 철책을 지나 월남한 사건이 되풀이된 것은 군이 마련한 대책을이 말단 부대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더욱이 군은 이날 8개월여 전에 국민앞에 약속했던 사고 재발방지안을 그대로 재탕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때문에 군의 사고 재발방지 대책이 해당 부대 실무자들의 의견과 동떨어지거나 이들의 의견은 듣지않고 책상머리에 앉아 내놓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도록 강요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전군 훈련소와 격오지 부대를 대상으로 폭력 실태 조사에 나서고 병사들의 인권강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총기 난사 사건이 고참의 언어폭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난 데서도 짐작이 가능하다. GP 근무 경험이 있는 군의 한 관계자는 "최전방 GP에서는 총기 사용이 쉽기 때문에 고참들이 후임병을 쉽게 구타하지 못한다"며 "구타를 하지 못하는 대신 심한 욕설이나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빨리 하도록 시키는 수법으로 괴롭히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간부들 뿐 아니라 고참병들에 대한 인권교육이 강화되고 언어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한 총기사고는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4월 13일 강원도 속초선적 '황만호'(3.96t)가 군의 경고사격을 뚫고 월북한 사건도 당시 대공사격을 이유로 해경 경비정과 해군 초계함을 어로저지선 이남으로 물러나도록 군이 요구하면서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결과였다. 최근 군은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육ㆍ해군과 해경을 통합지휘하는 합동작전지휘소를 설치하고 군과 해경의 공조체제를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것 보다 사건 발생시 실무자들이 얼마만큼 운영의 묘를 발휘할 수 있느냐가 통합작전 의 성패를 가를 것이란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13일 서해 최전방 해군기지에 매달아놓은 고속단정(RIB) 1척이 높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 것도 군의 안전사고 불감증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해군은 사고 당일 파랑주의보가 내려 해안에 높은 파도가 일었는데도 대당 가격 1억5천만원 넘는 RIB를 육지로 끌어올리지 않고 방치했다가 잃어버려 아까운 국민 세금만 낭비한 꼴이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어이없는 사건에도 불구하고 군내 팽배한 온정주의로 관련자 뿐 아니라 지휘계통 책임자 처벌은 경징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