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기묘하게도 생겼다.


혹은 버섯같고 혹은 남근같은 원추형의 수많은 연갈색 암봉들,가파른 바위벽마다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동굴들,풀과 나무는 보기 드문 황량한 계곡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바위산의 물결.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라도 온 기분이다.


터키 중부 고원지대에 있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첫 느낌은 이렇게 다가온다.


'카파도키아'란 페르시아어 '카트파두키아'에서 유래한 말로 '좋은 말들의 땅'이라는 뜻.


지도에 나오는 도시 이름이 아니라 서쪽의 악사라이와 동쪽의 카이세리,북쪽의 네브쉐이르,남쪽의 니이데를 잇는 광활한 땅을 일컫는 말이다.


악사라이에서 차를 타고 네브쉐이르에 접어들자 바위벽에 굴을 파고 사람이 사는 동굴집과 현대 주택들이 혼재된 모습이 눈길을 끈다.


돌산 전체를 동굴아파트로 만든 곳도 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기묘한 땅이 생겼을까.


카파도키아 인근의 에르지예스산(3917m)과 하산산(3268m)에서 수백만년 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한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이 일대를 뒤덮은 뒤 굳어져 응회암을 이루고 이 응회암이 풍화·침식되면서 현재의 지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한 기존의 사암 위에 응회암이 생성된 곳에서는 두 암반이 풍화·침식 정도를 달리하면서 버섯 모양의 희한한 암봉을 만들어냈다.


기묘한 풍경에 기후마저 온화하지 않은 척박한 땅.


이런 땅에도 사람들은 일찍부터 살았다.


인류사에서 철기문화를 처음 형성한 히타이트족이 기원전 2000년께 이 지역을 중심으로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지역을 통일했다.


히타이트 제국이 망한 뒤에는 카파도키아라는 독립왕국이 됐다가 후에 로마제국에 편입됐다.


로마시대에는 외부의 침입이 잦았고,4세기 초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기독교인들이 이 지역으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7세기께 페르시아와 아랍 등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면서 카파도키아로 이주하는 기독교인은 더욱 늘어나 11세기 무렵에는 인구가 7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박해를 피해 척박한 땅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바위를 파서 삶과 신앙의 공간을 마련했다.


집도,교회도,학교도,수도원도 모두 동굴 속에 꼭꼭 숨겼다.


그 대표적인 유적지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자 터키의 국립역사공원인 괴뢰메 계곡이다.


그 중에서도 괴뢰메야외박물관이 핵심이다.


'괴뢰메'란 '보이지 않는'이라는 뜻.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동굴 입구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매표소를 지나 박물관 구역으로 들어서자 7~8층의 동굴들이 층층이 들어선 거대한 원추형의 바위산이 시선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괴뢰메의 동굴 유적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수많은 바위산과 동굴들이 기다리고 있다.


괴뢰메야외박물관은 원래 종합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신앙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이곳에 무려 365개의 동굴교회를 만들어 생활했으나 지금은 16개만 남아 있다.


수도원 안에는 수녀원,수도원이 함께 있고 '사과교회''암흑교회''뱀교회''신발교회''버클교회''바르바라교회' 등의 이름을 붙인 동굴교회들이 즐비하다.


12세기에 만들었다는 사과교회는 바위 속에 돔모양의 천정과 네 개의 기둥을 만들었다.


동굴벽에 회칠을 하고 그 위에 천연안료로 그림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다.


최후의 만찬,십자가 처형,천사 등을 그린 벽화의 일부가 남아있는데 그림 속의 가브리엘 천사가 사과를 들고 있다고 해서 '사과교회'라고 이름했다는 설명이다.


8~9세기의 우상파괴운동으로 인해 성화 속 인물들의 눈이 대부분 파손돼 기독교 신자들을 가슴아프게 한다.


이런 사정은 다른 동굴교회도 마찬가지다.


박해속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옛사람들의 피와 열정을 기리는 뜻일까.


동굴 밖 곳곳에는 빨간 바탕에 적색 십자가 모양이 새겨진 '랄레'라는 꽃들이 만개해있다.


괴뢰메수도원을 나와 파샤바흐로 간다.


'요정들의 굴뚝'이라는 뜻의 파샤바흐는 위쪽의 응회암과 아래쪽의 사암이 풍화·침식되면서 버섯모양으로 남은 바위들이 모여있는 곳.


바위 하나에 세 개의 버섯이 있는 세쌍둥이 버섯바위 등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지하도시 카이마클.


박해자의 눈을 피해 동굴 속에 미로 같은 통로를 내고 집과 학교,식량저장고와 축사,우물,환기용 굴뚝과 묘지까지 갖춘 지하 대피소다.


절박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들은 지하 100m까지 통로를 내고 20층의 공간을 만들어 2만명이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땅속에 어떻게 이 많은 시설을 갖출 수 있었을까 싶다.


카파도키아에선 카이마클 외에도 데린구유 등 30여개의 지하도시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카타콤이 죽은 자들의 공간이라면 이곳은 산 자들의 공간이다.


지하도시에 들어서면 한기를 느낄 정도로 공기가 차다.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만한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지하 1층부터 마구간,교회,식량창고,포도주 양조장 등이 차례로 나온다.


20층 가운데 6층까지만 관람이 허용된다.


통로 입구마다 둥근 바퀴 모양의 돌이 있는데 적이 침입할 때 이를 굴려 입구를 막던 돌문이다.


통로를 좁게 하고 미로처럼 연결해놓은 것은 적이 한꺼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카이막클에서 9km나 떨어진 곳의 다른 지하도시와 통로로 연결된 것으로 밝혀져 생존을 위한 당시 사람들의 몸부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케 한다.


---------------------------------------------------------------------


< 여행수첩 >


아시아와 유럽이 공존하며 동서 문화의 교차로에 있는 터키.


힛타이트,로마,비잔틴,오스만투르크 등의 대제국이 번성했던 문명의 발상지이지만 우리에겐 낯설다.


인천∼이스탄불간 직항편은 터키항공(02-777-7055)이 주2회(월·토요일) 운항하고 있다.


7월1일부터 9월22일까지는 목요일 항공편을 임시로 추가 운항한다.


대한항공도 주 2회(화·금) 취항한다.


터키의 물가는 한국의 80% 수준.


살만한 기념품은 터키석과 같은 보석류,은제 그릇,실크 제품,카펫 등.중국·프랑스에 이어 세계 3번째 요리 천국이라고 자부할 만큼 음식이 다양하다.


관광지에선 정찰제가 아니므로 흥정이 필수.


관광지와 대부분 도시 상점에서는 터키리라(TL) 외에 미화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