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들 브루스 웨인은 자신의 눈앞에서 부모가 살해되는것을 무기력하게 보기만 한다. 브루스 웨인은 이후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살인자를 향한 분노에 떤다.
그러나 유년기의 정신적 상처는 웨인이 성장한 후 배트맨으로 거듭나는데 자양분이 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 이같은 내용은 대사를 거의 배제한 채 몇가지 장면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죄책감과 분노사이에서 방황하는 주인공은 정의를 선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타고난' 도덕성을 바탕으로 악을 응징했던 초인영웅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등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요소들이다.
브루스 웨인은 죄책감이라는 부정적인 면을 극복함으로써 비로소 정의의 사자로 거듭난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박쥐도 웨인이 적을 제압하는 심벌로 바뀐다.
'배트맨 비긴스'는 이 시리즈의 5번째 작품으로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뛰어난 심리적 성찰이 돋보인다.
초현실주의적 분위기로 채색됐던 팀 버튼 감독의 두 전작이나 눈부신 색채로 단장됐던 조엘 슈마허 감독의 두 전작과는 차별화한다.
놀란 감독이 연출한 '인썸니아'와 '메멘토'의 주인공들처럼 웨인은 정신적 상처를 입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배트맨의 초능력은 '슈퍼맨'이나 '헐크' '스파이더맨'처럼 타고 났거나 우연한 사고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땀의 결실이다.
주요 캐릭터들은 기존 이미지를 뒤집었다.
출세작 '아메리칸 싸이코'에서 연쇄살인범 역으로 나왔던 크리스찬 베일이 배트맨 역을 맡았고 '쉰들러 리스트'의 니암 리슨은 악당 듀커드로 변신했다.
또 '레옹'의 나쁜 경찰 역 게리 올드먼은 청렴한 경찰 고든 역을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이 영화에선 볼 만한 액션장면도 많다.
배트맨이 세련된 컨셉트카가 아니라,군용 차량을 개조한 '탱크차'를 타고 지붕 위를 달리는 장면이 특히 실감난다.
16일 개봉 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