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과학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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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이자 정치인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필자 기억으로는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 정도다.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과학과 정치에서 동시에 이름을 날린 사람들이 적다고 한다면 과학과 정치라는 게 워낙 서로 다른 세계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황우석 교수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정계 진출 가능성과 장관직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주위에 정치와 행정 쪽에 몸담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을 보면서 나는 정치와 행정에서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간파했다"며 "내가 남을 곳은 실험실"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비교 우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가 하려고만 들면 그 어느 정치인이나 행정가 못지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판단이 오늘의 그를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그의 그런 의도와는 달리 주변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그를 보면 과학과 정치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상에 있다는 느낌도 든다.
최근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대주교는 강론문 형식을 빌려 배아줄기세포의 윤리적 문제를 '살인' 등의 표현까지 사용하며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또 윤리적 문제가 적은 성체줄기세포 연구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이를 계기로 기독교와 불교계 등에서도 비슷한 얘기들이 튀어 나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기에 '진보'라고 자처하는 일부 학자들과 시민단체들(미국에서는 보수파가 배아 복제에 반대하는 것과 달리)이 가세함으로써 한동안 잠잠하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생명윤리 문제가 또 다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황우석 교수는 이런 종교계의 움직임에 대해 만나서 이해를 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그가 직접 나서야만 하는지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무엇보다 종교계가 이 시점에서, 그것도 황우석 교수 및 그의 연구를 직접 거론하고 나선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정말 의문이다. 생명윤리법이라는 것이 지난 1월부터 발효된 상황이고 보면 종교계가 굳이 문제삼을 것은 황 교수가 아니라 이 법이어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만약 정 대주교가 이 법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면 황 교수가 직접 나설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 법은 황 교수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여 종교계는 성체줄기세포라는 대안적 연구도 제시했다. 이는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방향과 연구예산 배분에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이 역시 황 교수가 종교계의 이해를 구하고 말고 할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법과 정책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영역에 해당되는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황 교수가 아니라 과학기술부 장관,보건복지부 장관,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그리고 국회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것은 정부가 존재하고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배아복제 연구와 관련, "납세자(tax payer)들의 돈을 그런 데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가 이 연구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거기엔 관심이 없다. 다만 그가 말한 '납세자'라는 단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납세자들의 지지를 획득하면 법도 정책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납세자들은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종교계는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정부와 국회는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실험실에 남고 싶다는 과학자가 진정 바라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