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11일 한미정상회담은 흔들림 없는 한미동맹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북핵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부시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침공 의사가 없다는 점을 다시한번 명확히 하면서 북한의 핵포기시 ▲다자안전보장 ▲에너지 등 실질적 지원 ▲북미관계 개선과 수교 용의를 직접 표명한 것은 북핵사태 해결의 중대 모멘텀이 될 수 있는 획기적인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북한의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거부 선언 이후 미국 행정부 내에서 유엔안보리 회부 등 대북 제재 조치가 공개적으로 제기될 정도로 유동성이 증폭돼온 북핵 국면이 일단 교착 내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한 해결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미 정상이 2시간10분에 걸친 회담에서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한 목소리"라는 표현을 써가며 의견일치를 강조한 것도 '압박'보다 '대화'를 통해 북핵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밀도 있게 진행된 한미 외교.안보라인간 사전 조율에 따라 어느정도 예상했던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이달초 뉴욕에서 가진 미국과의 접촉에서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등 6자회담 재개 여건이 한층 성숙됐다는 미국측의 상황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호칭한 것도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북핵문제에 대해 노 대통령이 "기본원칙에 있어 완벽하게 합의하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 부시 대통령이 "한미 양국은 같은 목소리로 계속 협조할 것"이라고 화답한 것은 양국이 북핵의 외교적 해결방식에 뜻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한미공조를 더욱 다져나갈 것임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한미간의 확고한 공조체제 구축을 바탕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나머지 6자회담 참여국들에 의한 북한의 6자회담 조기 복귀를 유도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두 정상이 이번 회담을 통해 동북아지역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북한내 급변사태에 대비한 군사적 대처방안인 '작전계획 5029' 논란 등 한미동맹문제를 둘러싸고 불거진 이견을 상당 부분 제거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특히 한미동맹을 상호 합의 정신에 기초해 포괄적이고 역동적 관계로 발전시켜나가기로 합의한 점은 한미관계 재정립 방향과 관련해 의미있는 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울러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 자리를 통해 전날 미국 트럭에 희생된 한국의 중년여성 유가족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 것은 한미동맹의 전략적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성과는 특히 양국 정상간의 허심탄회한 대화의 결과물로 알려져 주목된다. 노 대통령이 한미동맹과 관련해 기자회견이란 공개된 장소를 통해 "한, 두가지 작은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이는 대화를 통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소견을 얻었다"고 하자 부시 대통령이 "솔직한 평가에 감사한다"고 말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측면에서 두 정상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미동맹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대내외에 심어주면서 양국관계에 대한 우려 섞인 시각도 불식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양국 정상이 회담의 주요 논점이 될 것으로 예견됐던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 논의하지 않은 것이나 전략적 유연성 등 나머지 현안에 대해서도 외교.국방장관간 지속적인 협의를 해나가기로 의견을 모은 것도 이를 입증한다. 반 장관은 "한미동맹 관계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2년반 동안 과거부터 해묵은 현안을 상호 이익되는 방향으로 원만히 해결하면서 어느 때보다 건강한 상태에 있다는 데 양국 정부의 공통된 평가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물론 부시 2기 행정부 출범 후 처음인 이날 두 정상의 대좌가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관측이 대두된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북한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없지 않다. 양국 정상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외교적 노력 경주와 함께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재확인했다는 '외교적 수사'의 이면에는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는 메시지가 복선으로 깔려 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 또한 이날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 요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이미 작년 6월에 우리는 북한측에 합리적인 제안을 했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힌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일 수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6자회담을 핵무기 군축 협상으로 끌고가려는 북측 의도에 쐐기를 박는 한편 대북 온건파 등 일각에서 거론되는 추가적인 '대북 유인책'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사를 밝힌 것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부시 대통령은 '유인책'과 관련, 북한이 회담에 들어오는 자체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반기문 외교장관은 전했다. 오로지 조속한 대화복귀 등 사태해결을 위한 북한의 진실한 노력만이 북핵을 둘러싼 불투명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관통한 강조점은 미국과 일본 강경파가 줄곧 제기해온 경제봉쇄 등 제재 조치가 아닌 대화의 틀을 통한 문제 해결에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회담에선 북한에 민감한 인권문제에 대해 노 대통령이 한국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쳤고, 북핵 상황 악화시 대응조처 문제도 구체적으로 검토되지 않고 실무 수준에서 협의를 갖는 것으로 정리됐다. 특히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 노 대통령은 "북한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특히 인도적 지원이라든지 기타 남북교류를 통해 개선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반 장관이 전했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이 이런 한미간의 외교적 노력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선택을 내릴지가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게 됐다. 당장 이날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북측 반응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남측의 대규모 방북단이 파견되는 평양 6.15 행사와 남북장관급 회담이 북핵문제 및 6자회담 재개 여부를 가르는 기점이 될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일단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측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용인했지만 그 시한은 지난해 11월 칠레 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그리 길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6자회담이 계속 공전되거나 회담이 열려도 진전을 보이지 않을 경우, 북한이 핵무기 제조 등 상황을 추가로 악화시키는 등의 특정 시점에 가면 이를 제어하기 위한 미국의 압박도 구체성을 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반 장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경우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대외적으로 분명히 밝혔다"면서 "이제는 북한이 화답해 국제사회에 책임있는 일원으로 존중받는 현명한 결정을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김범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