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기 '김치는 우리의 문화요,얼이다. 역사와 함께 해 온 김치는 조상의 슬기가 담긴 전통 식품으로 쌀밥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민족의 먹거리로….' 이 글귀는 농협이 선포한 '김치 종주국 선언문'의 일부분이다. 김치는 이제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도 함께 즐기는 우리 겨레의 값진 유산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김치는 수입 김치에 밀려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지난 5월 농림부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올 1~3월 김치 수입물량은 2만1964t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만240t에 비해 114.5%나 급증했다. 반면 수출은 올 3월 말 현재 9330t,2804만달러를 기록해 작년 동기보다 각각 6.6%,7.8% 늘어나는 데 그쳤다. 김치 수입물량은 2001년만 해도 393t에 불과했지만 2002년 1051t,2003년 2만8700t,2004년 7만2600t 등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 수치는 2001년 대비 무려 185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추세로 볼 때 올해 김치 수입 예상량을 10만t으로만 잡아도 신선배추로 환산하면 20만t에 이른다. 이는 전국 배추 값의 기준 가격을 형성하는 서울 가락시장 연간 거래량의 80%에 가까운 엄청난 물량으로,3년째 바닥세를 보이는 국내 배추 값 폭락의 주범이 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 피해가 무·배추 등 한두 품목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종 양념류 등 전체 채소류의 소비 급감을 불러와 자칫하다가는 김치산업뿐만 아니라 우리 채소농업의 기반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어려운 한국 김치산업의 현실 속에서 최근 국내 모 재벌 기업 계열 대형 할인점이 저가의 중국산 완제품 김치를 들여와 김치 종주국의 '안방파괴'에 나서 국내 김치 관련 업계 및 농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김치 수출과 관련한 정책은 어떤가. 김치 수출은 2002년 '월드컵 특수'를 맞으면서 최근 수년간 매년 평균 10%대의 급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해외로 수출한 한국산 김치는 1억2000만달러어치다. 그러나 그 속을 깊이 들여다 보면 많은 모순점이 있다. 김치 수출 물량의 상당량은 중국산 배추와 무·고춧가루 등으로 만든 '무늬만 국산 김치'다. 그럼에도 불구,정부는 김치 원료의 국내산·수입산을 가리지 않고 수출업체에 대해 똑같이 김치 수출 실적에 따라 kg당 114원씩을 물류비로 지원해 주고 있다. 문제는 국산 농산물 원료보다 30~50% 싼 중국산을 사용해도 국내에서 가공한 경우 '농산물 품질관리법'상 원산지를 한국으로 표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또 김치 가공을 위해 수입한 원·부재료의 수입관세를 김치를 만들어 수출할 경우 '수출용 원재료 관세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고스란히 돌려 받게 돼 중국산 원료 사용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김치 수출은 해마다 늘어나도 국내 농업인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순수 국산 원료를 사용해 만든 '국산 김치'만의 차별화 전략을 세워 수출 확대를 기하는 것이 우리 농산물의 가격 지지와 함께 농업인을 돕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