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1층 구석진 사무실.창고 같은 느낌마저 주는 이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30여평의 공간을 대기발령 공무원 2명이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


캐비닛 등 사무기구도 없이 달랑 컴퓨터 한 대와 '능력개발처 ○○○'라는 명패만 놓여 있었다.


대기발령자 A씨는 "행정자치부 팀제와 관련한 인사에서 업무를 부여받지 못해 지난달 초부터 두 달째 대기 중"이라고 한숨지었다.


직업 안정성 때문에 공무원이 되려는 젊은 구직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지만 '철밥통'이라는 공직사회에 일부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일단 공무원만 되면 정년(5급 이상 60세,6급 이하 57세)이 보장되는 지금까지의 시스템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실제 A씨를 포함한 행자부 대기발령자 6명은 비리 등에 연루됐거나 과오가 있어 업무를 부여받지 못한 게 아니다.


행자부가 지난 3월 정부기관 중 처음으로 팀제를 도입하면서 실시한 팀원 인사에서 팀장 중 누구도 이들을 부하직원으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자부 인사담당자는 "올해부터 팀별,개인별 성과에 따라 봉급인상과 승진이 이뤄지기 때문에 팀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으로 보이는 팀원은 팀장들이 거부하고 있다"며 "팀제,성과급제 등이 도입되면서 정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공무원은 거의 없어졌다"고 털어놨다.


이런 성과주의와 팀제는 이제 행자부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보건복지부 등 주요 중앙 부처들이 팀제 도입을 준비 중이다. 서울시도 내년 하반기부터 팀제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의 직업 안정성만 보고 공무원을 택한다면 오산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고학력의 젊은 구직자들이 9급 등 하위 공무원직에 대거 몰리는 현상 등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천오 명지대 교수(행정학)는 "공직을 민간에 개방하고 정년을 보장하는 직업공무원제를 축소하는 것은 정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큰 트렌드"라며 "현재는 없는 공무원 퇴출제도도 새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인적자원센터장은 "시간이 갈수록 공직사회 내 경쟁은 심화될 것"이라며 "공무원이 된 뒤 민간 전문가들과 경쟁할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낭패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직의 민간 개방도 상당부분 진행됐다. 실제 그동안 고위공무원 등용문이었던 5급 공무원 공채(행시,외시) 합격자는 지난 2002년 292명에서 작년 218명으로 줄어든 반면 2002년 46명에 불과했던 특채 5급 공무원은 지난해 203명으로 4배이상 늘었다.


이공계 전문가,특허심사 전문가 등 경쟁력 있는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채용이 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학력자들이 '묻지마'식으로 공무원이 되려는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정부 경쟁력도 높이려면 공직사회에도 노동 유연성을 가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원석 센터장은 "특채나 민간개방직을 더 확대해 공무원 진출입이 보다 더 쉽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2007년 도입되는 공무원 인턴제가 한 유형"이라고 말했다.


박천호 교수는 "계약직,시간제,계절제 등 채용과 퇴직이 손쉬운 다양한 공무원직을 만들어 공무원 인력 운용을 탄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계급정년제나 대학에서 도입하고 있는 교수 재임용제 등과 같은 제도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그러나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성과주의와 팀제 등이 제기능을 발휘하려면 적정한 보상시스템과 퇴출구조가 마련돼야 하지만 공무원은 봉급이 기본적으로 계급과 호봉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자치단체장은 주민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정치인인 만큼 공무원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공무원 퇴출시스템을 만들지도 의문이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