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불균형 23년만에 최악‥1분기 가계수지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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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1·4분기 가계수지 동향'은 올들어 소비심리가 회복됐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실제로는 좀체 지갑을 열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이처럼 가계가 소비지출에 적극 나서지 않은 것은 집값 불안에 따른 주거비 부담과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고 동원된 세금인상 등이 직.간접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집값 급등→주거비 상승과 세금인상→가처분소득 감소→소비위축→경기회복 지연'의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번 만큼도 안 쓴다
올 1분기 전국 가구와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동기보다 각각 5.8%와 5.2% 늘었다. 그러나 도시근로자 가구의 경우 소득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근로소득 증가율은 올 1분기 2.4%에 그쳐 외환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1999년 2분기 1.6%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가구주 근로소득 증가율 역시 1.9%에 머물러 1999년 2분기 1.5% 이후 가장 낮았다. 전국 가구의 근로소득 증가율도 올 1분기에 3.6%에 그쳐 지난해 4분기 3.7%와 지난해 1분기 7.5%를 밑돌았다.
이처럼 지난 1분기중 소득도 크게 증가하지 않았지만 더 심각한 건 소비는 더욱 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국 가구의 소비지출 증가율은 4.0%로 작년 1분기 8.1%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비지출 증가율도 4.5%에 그쳐 1998년 이후 가장 낮았다. 대부분 가계가 소득이 늘어난 만큼도 쓰지 않고 허리 띠를 졸라맸다는 얘기다.
전국 가구의 소비지출을 품목별로 보면 교양·오락비가 1.6% 줄었고,교육비는 증가율이 0%로 제자리에 머물렀다. 반면 월세 등 주거비는 9.6%, 병원비 등 보건의료비는 16.1%나 증가했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경우 교양·오락비가 7.0%, 잡비 등 기타소비지출은 0.9%씩 감소했다.
○집값 불안으로 소비 위축
올들어 소비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데는 집값 불안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소비지출 중 주거비 부담이 높아지고, 세금이 다른 비소비지출에 비해 두드러지게 증가한 것 등이 방증이다. 통계청의 주거비 조사는 월세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올들어 서울 강남과 분당을 중심으로 급등한 집값이 월세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전국 가구의 비소비지출(5.2% 증가) 중 세금(직접세)이 10.0%나 증가한 것은 정부의 부동산 투기억제용 세금인상에 기인했다는 게 중론이다. 올들어 3월까지 일반 가구에서 지출했을 만한 세금은 취득·등록세 등 부동산 거래세와 양도소득세 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올들어 부동산 거래세의 과세표준(세금을 매길 때의 기준금액)을 국세청 기준시가로 바꿔 세금을 올렸다.
○'부익부 빈익빈' 지속
올 1분기 도시근로자 가구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5.87로 지난해 1분기(5.70)와 4분기(5.69)보다 각각 0.17포인트와 0.18포인트씩 올라갔다. 이 배율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2년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배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계층간 소득격차가 벌어졌다는 의미다.
전체 도시근로자가구의 소득 가운데 특정 계층 소득의 비중을 보여주는 소득점유율은 1분위 5.1%, 2분위 11.9%, 3분위 17.1%, 4분위 23.6%, 5분위 42.2% 등으로 상위 20%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또 1분위와 2분위 소득점유율은 지난해 동기보다 각각 1.9%포인트와 0.9%포인트 감소했지만 4분위와 5분위는 각각 0.4%포인트와 2.3%포인트 증가해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집값 불안은 일반 가계의 주거비 상승은 물론 세금과 같은 비소비지출 증가로 이어져 소비를 위축시킨다"며 "여기에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까지 겹쳐 중산층마저도 소비를 늘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득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다는 건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분배는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며 "정부는 경기활성화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