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1개월 전으로 되돌아갔다." 북한이 폐연료봉 추출을 완료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우리 정부 당국자가 보인 첫 반응이다. 북한은 지난달 19일 영변 원자로의 가동중단과 함께 재처리 방침을 시사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즉각 유엔안보리 회부 등 제재조치를 취하겠다며 북핵을 둘러싼 긴장국면이 조성됐었다. 일단 북의 이번 선언은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재처리에 들어갈 것임을 예고함으로써 "핵무기를 늘려 나가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외부에 주지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모두 마치면 가존 보유분을 포함,올 연말까지 모두 11개 가량의 핵 폭탄을 보유하게 된다. 더구나 북한은 5MW급 실험용 원자로 외에 공사를 중단했던 50MW급 원자로와 200MW 원자로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입장도 재차 확인했다. 북한의 이번 발표는 중국의 적극적인 중개로 6자 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외교적 노력이 급피치를 올리는 시점에서 터져나왔다. 당장 미?일 정부 내 강경파를 자극하게 된다는 점에서 분명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1년 가까이 중단된 남북간 당국자 회담 역시 재개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수면위로 가라앉았던 '6월 위기설'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강경카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미국에 대한 불신감 외에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미국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황 판단을 깔고 있다. 주변국의 동의없이 미국 단독의 대북 선제공격이 불가능하며 제재조치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러나 북한의 이번 조치를 자위력 확보를 명분 삼아 체제보장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맞교환하기 위한 양자타협의 요구수준을 강력하게 끌어올리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외부에서 "예정된 수순" 또는 "식상한 재료"라며 북의 이번 조치를 평가절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변수는 폐연료봉의 재처리에 돌입하기 위해 필요한 3개월의 시간.기술적으로 플루토늄 추출을 위해서는폐이번에 추출한 폐연료봉을 수조에서 냉각시켜야 한다. 이 시점은 8월 이후로 유엔총회가 열리는 시기와 맞물린다. 북한 전문가는 "미국의 인내력과 일본의 조급함을 끊임없이 시험대에 올리며 예의 '벼랑끝 전술'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12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