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병원에서 열심히 일하던 유명 의사가 갑자기 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그 이유가 심각했다. '휴일도 없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다 보니 아이 얼굴 볼 짬이 없었다. 어느 일요일 모처럼 시간이 나 함께 놀아주었더니 "아빠,또 놀러 와요" 하는 게 아닌가. 마치 나를 이웃집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 의사는 곧 직업을 바꿨고 현재 일본에서 컨설팅·저술·강의로 예전보다 더 잘 나가는 인사가 됐다. 전업한 지 15년,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번뿐인 내 인생 이렇게 살고 싶다'(고바야시 츠카사 지음,이종영 옮김,21세기북스)를 펴냈다. 왜 허무한가,딜레마로 고통받는 사람들,보람찬 삶을 꾸려 나가는 지혜 등 깊은 통찰력이 돋보인다. 문학·철학·종교 등 다방면에서 인용한 사례와 조언도 풍부해 지금까지 40쇄 이상을 찍었으며 대학입시 지문으로 출제되기도 했다. '당신의 명함을 버려라. 회사를 그만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어진 역할에 지나치게 몰두함으로써 정체성의 위기를 겪지 말라는 것이다. 현실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고 자신은 오직 타인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인물이 된다. 이 충고를 무시했을 때 사는 의미는 희석되며 우울증이 온다.' 절망으로 인한 무서운 결과를 전해주는 이야기 한 토막. '아우슈비츠에 갇혀 있던 한 유태인은 1945년 3월30일이면 2차대전이 끝날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3월29일 고열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 1944년에도 크리스마스날 석방될 것이라는 소문이 수용소 내부에 돌았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그날 밤부터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 나갔다.' 한 편의 영화 같지만 '엔지(NG)'도 허용되지 않고 편집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 지금부터라도 일생이라는 주어진 러닝 타임 안에서 자기만의 삶을 그린 예술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가정의 달인 5월,자신의 행복을 유예하고 살아가는 대다수 어버이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3백4쪽,1만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