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제, 희망을 갖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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兪炳三 < 연세대 교수·경제학과 >
일부 선행지표의 두드러진 호전에도 불구하고 내수실적 지표들은 여전히 두드러진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랜 갈망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활발히 살아나지 않고 있으니 안타깝다. 여기에 유가와 환율이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북핵문제 역시 걸림돌이 될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거기에다 우리 경제는 양극화의 골이 깊어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경기회복이 본격화되더라도 탄력있게 상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형편이다.
흔히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래에 대한 희망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낙관적인 경제전망은 단기적으로 가계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하고 기업 투자를 촉진시킨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유지시켜 경제성장의 추세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 좋은 정책이라는 것들의 대부분도 따지고 보면 경제주체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대체로 지난 8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낙관적 희망이 점차 위축되는 과정을 밟아오고 있다. 그래도 경제가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서서히 '김이 빠지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 경제 당국이 국민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하려 애쓰는 모습을 종종 보지만 큰 효과는 없어 보인다. 근본적으로 희망은 경제주체의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이기에 실체가 잘 보이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희망이 위축돼온 데에는 경제의 내부적인 문제도 있다. 예를 들면 경제의 고속 성장과 국제화 과정에서 산업구조가 급속히 변하면서 발생한 양극화 현상이 그것이다. 이중 사양부문의 일부는 기술개발과 내부혁신에서 뒤처져 그리된 기업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우리의 부존자원 구조 자체가 개방이 곧 쇠퇴를 의미할 수밖에 없는 산업도 있다.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희망이 위축되는 데에는 경제 외적 원인에 의한 부분도 매우 커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시장원리가 외면되고 경쟁의 원칙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문제가 매듭지어지는 경우를 적잖이 보아왔다. 80년대 중반 이후 소위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이어지는 두드러진 현상이며 현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현정부가 표방하는 '참여'는 분명 전체를 위한 발전에 참여하자는 뜻이겠으나 지난 2년간은 참여가 곧 자기주장의 목청을 높이고 고집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 흔하다. 하긴 정치권의 모습이 그러했으니 참여를 '초대받은' 일반 국민들도 그러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두드러진 영역의 대표적인 예가 우리의 교육과 노동시장이다.
우리의 교육은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부문이다. 경쟁의 원리가 필수적인 영역임에도 정부가 자진해서 이를 저지하고 있으니 그렇다. 왜곡된 평등주의가 결과적으로 우수한 인재양성을 저해하고 있다. 인재양성이 우리 경제의 거의 유일한 희망임에도 그와는 맞지 않는 방향으로 교육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 부산물로 나타나는 하향평준화로 인해 우리 경제의 장기적 희망은 자꾸자꾸 위축될 전망이다. 기술력이 결국 경제력인데 인재를 제대로 키우지 않고 어떻게 외국에 비해 우위를 꿈꿀 수 있겠는가.
시장원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또 다른 예가 우리의 노동시장이다. 시장원리보다는 힘겨루기가 주요수단이라는 면에서 그러하다. 힘으로 득을 보는 일이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좋겠으나 해당 기업에는 당장 비효율의 멍에가 지워진다. 그 반사효과로 얻었던 이득의 대부분은 사라진다. 그리하여 악순환은 반복되고 경제에 대한 희망도 더불어 위축된다.
정부는 국민과 더불어 경제의 희망찾기를 해야한다. 정부는 법과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고 국민이 자기주장에 앞서 전체를 생각하도록 해야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인기가 걱정되더라도 밀어붙이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깨끗한 정부, 과거사 정리와 같은 일들은 이런 면에선 이상일 뿐이다. 경제의 희망은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