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요즈음에도 노조의 농성이 계속되고 있다.비정규직 노조원들이 파견근로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제5공장 탈의실에서 1백일째 단체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 정규직 노조까지 가세해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문제는 올 노사협상의 최대 이슈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와 연대하여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협력키로 합의한 상태다.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비정규직 문제는 회사측만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비정규직 문제는 인력을 최대한 탄력적으로 운용하려는 기업들의 고용전략과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가 어우러진 결과로 분석된다. 기업들은 인력운용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 비정규직을 채용한다. 노조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기업들은 경기상황에 따라 인력을 용이하게 조정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늘려온 것. 노조도 이같은 회사측의 고용전략에 알게 모르게 동의해왔다. 실례로 현대자동차는 지난 2000년 6월 체결된 노사간 완전고용 보장 합의서에서 비정규직 비율을 97년 8월 이전 비율인 16.9%로 정해놓았다. 정규직 채용 때는 40%를 사내하청 근로자 중에서 뽑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 비율이 30%를 넘고 있다. 조합원의 작업장 전환 배치시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단체협약에 못박아 놓은 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한쪽 공장에선 인력이 남아돌고 다른 공장에선 인력이 모자라도 전환?배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더 많이 채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한봉 노동부 비정규직대책과 사무관은 "현대자동차에 비정규직이 많은 것은 완전고용보장 합의서 탓이 크다"며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려면 고용보장합의서와 함께 단협에 명시된 전환배치에 대한 노조의 동의 조항을 완전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현장 곳곳에서 노사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인건비가 싸고 해고가 용이해 기업들이 채용을 선호하지만 최근들어 임금인상,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와 매그나칩반도체의 청주공장.이들 두공장은 금속노조 사내하청 지회가 설립된 지난해 10월 이후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하청노조 지회는 출범 직후인 지난해 11월 4개 하청업체가 불법파견을 했다며 청주 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2개월여에 걸친 노동부 조사 결과 3개 업체는 정상적인 파견으로 판명됐다. 1개 하청업체만이 일부공정에 불법파견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노조는 모두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자체적인 재조사에 들어갔고,급기야 12월5일부터는 원청업체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인상,성과금지급 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하청회사는 곧바로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원청회사와 계약을 종료했다. 4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1백76명 중 1백10여명은 신규하청업체로 직장을 옮겼으나 60여명은 취업을 하지 않은 채 불법파견여부를 재조사하라며 집단투쟁을 벌이고 있다. 청주지방노동사무소 Y근로감독관은 "하이닉스와 매그나칩반도체의 사내하청 문제는 생존권투쟁이 아니라 노동세력의 지원을 받은 깃발투쟁이어서 인근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도 동참하기를 꺼려한다"며 "이미 조사가 끝난 부분을 물고 늘어지며 투쟁을 벌이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문제는 정규직노조로서도 못본 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직접 관여하기도 껄끄러운 뜨거운 감자다. 최근들어 대기업노조들이 내몫만 챙기며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당하자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지만 비정규직을 위해 자신들의 몫을 양보하는 데는 여전히 인색하다. 금융노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금융노조는 임단협 교섭에서 정규직 임금동결을 통한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식을 제시해 비정규직 근로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5% 임금인상을 양보해 이 가운데 2.5%를 실업 해소를 위한 신규채용에 배분하고 1%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할당해 3천3백14명을 정규직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또 나머지 1.5%를 비정규직 임금인상에 배분,연간 1인당 1백79만여원의 임금을 올려주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 방안은 금융노조 지부에서 현장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의 만장일치로 부결됐다. 보건의료 노조와 금속노조를 비롯 대다수 노조들도 노사협상 때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내걸고 있지만 구체성이 떨어지는 데다 정규직 노조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대부분 없었던 것으로 흐지부지되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