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 < 중동경제연구소장 > 1990년 5월22일 남예멘의 수도 아덴에서 '예멘 통일'이 선포되자 예멘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독일 통일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터라 더 큰 충격이었다. 사회주의 체제가 힘없이 붕괴하고 독일에 이어 예멘의 통일이 이루어지자 자연히 그 관심은 한반도 통일로 모아졌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예멘 통일의 특징은 국제질서의 흐름에 잘 편승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남예멘은 개혁의 어려움을 곧바로 남북통일로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이러한 노력이 곧바로 '통일'로 연결된 것이다. 통일 과정에서 남북 예멘은 합의를 통한 노력을 꾸준히 실천했다. 남북 간 자유 왕래,단일 역사교과서의 활용,텔레비전을 통한 홍보 등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이뤄냈다. 지난 83년부터는 주민들이 신분증만 가지고 자유로운 왕래를 할 수 있었다. 나아가 84년 이후에는 단일 역사교과서를 채택함으로써 이질감 해소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예멘 통일에서 역시 중요한 점은 '경제적 요인'이 통일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통일 이전에 이미 남북 예멘 간에는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고조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예멘 통일의 가장 큰 요인은 석유를 포함한 광물자원의 공동 개발과 아덴항 개발이었다. 이 과정에서 남예멘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는 통일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그래서 독일 통일이 '흡수통일'이라면 예멘통일은 '합의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 이후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환율 급등 등의 경제문제에 부딪치기는 했지만 사회 통합의 전 단계인 통화통합을 무난히 달성했기에 예멘의 통일은 역사적으로 '합의통일'에 의한 모델 케이스로 남을 것이다. 예멘 통일의 교훈은 신뢰 회복을 위해 남북이 인내심을 갖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국어와 역사의 통일된 교과서 제작 및 교육이 민족 동질성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남북이 공동 제작하는 TV 라디오 프로그램,학술 교류,예술단체의 교류 활성화도 동질성 회복의 선결 조건이다. 봄은 왔지만 한국은 아직 춥다. 통일을 이룬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레 대통령이 온다고 하니 반갑다. 이번 방한에 아라비아 반도의 따뜻한 통일의 열기도 함께 가져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