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유 도입량의 78%(작년 기준)를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 가격이 올들어 배럴당 50달러선(두바이유 기준)을 넘어섬에 따라 회복 기미를 보였던 국내 경제가 다시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휘발유 경유 등 석유 관련 제품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기업들의 채산성도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두바이유 가격은 작년 평균가격인 배럴당 33.64달러보다 15달러 이상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국내 경제가 고(高)유가 격량의 한복판에서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연간 소비하는 에너지 가운데 절반 가까이(45.6%·작년 기준)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경제는 고유가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골드만삭스가 국제 원유 가격이 '폭등 주기(Super hike)'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며 수년 내 배럴당 최고 1백5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지난주 전망하는 등 국내외 시장예측 기관들은 앞다퉈 초(超) 고유가 상황 전개를 점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급등이 소비와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물가상승만 부추기는 결과를 불러올 경우 국내 경제가 경기침체의 깊은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연평균 1달러 오를 경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1%포인트 낮아지고,물가는 0.15%포인트 오르며 경상수지는 7억5천만달러 악화된다.


정부가 전망한 올해 두바이유 평균 가격이 배럴당 37∼40달러임을 감안하면 올해 고유가 변수로 경제성장률이 0.3∼0.6%포인트 떨어져 경제운용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산업계에도 고유가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항공 해운 중화학 등 유가에 민감한 업종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기업들은 전사적인 에너지절약 운동,제품가격 인상,공장가동 중단 등의 묘책들을 짜내고 있으나 고유가로 인한 비용상승을 상쇄하는 데에는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되는 유가 수준(두바이유 기준)은 배럴당 평균 39.9달러이고,기업경영이 곤란하게 되는 유가 수준은 배럴당 48달러로 조사됐다.


지난 4일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50.51달러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중소기업들은 이미 비용상승으로 인한 한계상황에 내몰린 셈이다.


여기에다 철강 비철금속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올들어 다시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는 등 기업들은 이중고에 허덕이고 있다.


작년초에 이은 제2의 원자재 대란이 현실화될 경우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와 도산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를 물쓰듯' 사용하는 국민들의 에너지 과소비 습관은 변하지 않고 있다.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이 ℓ당 1천4백원을 넘어섰고 경유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ℓ당 1천원을 돌파하는 상황에서도 국민들의 중·대형차 선호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시내 유흥가는 물론 문을 닫은 패션·잡화점까지 매일밤 화려한 조명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 고유가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에너지 저(低)소비형 사회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과 기업들의 에너지 낭비 습관이 바뀌지 않고서는 국제유가의 단기 급등에 국가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는 사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원·달러 환율 하락과 산업구조 고도화로 과거 1,2차 오일쇼크와 같은 고유가 충격에서는 한발짝 벗어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에너지절약 유도를 위한 승용차 10부제 강제시행 등 단기대책은 최대한 지양하되 해외자원 개발 확대와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 국가에너지 체질강화를 위한 중·장기 대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원걸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은 "에너지원단위와 에너지탄성치 등 국내 에너지효율 지표가 꾸준히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고유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에너지절약 노력이 필요하다"며 "에너지 절약이 국가와 기업의 생존전략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