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A는 B다'라고 말하면 A는 B의 한 부분처럼 들린다. 'A도 B다'라고 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수학을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와 같은 명제가 '참'이라면 논리적으로도 그렇다. 만약 'B도 A다'라는 명제 역시 참이라고 한다면 그 때는 A와 B는 대등하고 또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개혁이 화두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은 산업이다"라고 했다. 이 말이 대학측엔 '대학도 산업이다'라고 들리는 모양이다. 대학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개혁적이라고 평가받는 정운찬 서울대총장조차 그런 논리가 초래할 지 모를 부정적 측면을 걱정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대학 스스로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막상 정부가 뭔가 해 보겠다고 나서니 뿌리깊은 피해의식이 되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의 그런 심정이 이해 안되는 것도 아니다. 1980년대 졸업정원제 도입에서 보듯 정권적 차원에서 대학이 하루 아침에 실험장으로 전락했던 적도 있고,대학 설립이 정치인들의 단골 선거공약이 되기도 했었다. 정부의 대학정책은 규제일변도였고,국민들의 대학에 대한 관심이란 것은 자식이 대학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급전직하했다. 오늘날 대학을 보고 왜 불량인력만 양산하느냐고 타박하는 기업들 또한 그동안 대학에 얼마나 관심을 보였고 투자를 했는지 따져보면 별로 할 말이 없을듯하다. 그러나 이 모든 점을 감안해도 대학 스스로 반성해 볼 점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학개혁은 정부와 대학의 양자 게임이라 하기 어렵다. 대학들이 풀어달라는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 소위 3불(不)정책만 하더라도 지금의 국민정서와 결코 무관하다 할 수 없다.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세계적인 대학들이 나오면 3불정책도 몇년 내 완화될 수 있다는 의미의 발언도 했다고 하지만,이것이 말이 되고 안되고는 차치하고 그가 그러고 싶다 해서 풀릴 성질의 것이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 개혁은 대학과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 기업 그리고 정치권도 관련돼 있는 다자간 게임이다. 대학이 오로지 정부에 대고 불평불만만 한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란 얘기다. 지역민이나 국민,기업의 신뢰와 지지를 얻도록 노력하고,대학들이 요구하는 자율성 문제도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쟁취하려는 생각을 가질 때도 됐다. 불행히도 대부분 대학들의 주체의식은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대통령의 말이 대학은 산업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얘기로만 들리고,산업의 논리가 대학을 지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면 논리적 비약일까. 대학의 능동적 자세가 절실해 보인다.산업의 변화를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혁신주도형경제 기술중심경제 지식기반산업 등의 용어들로 표현되는 그런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산업도,기업도 이제는 '교육하고,훈련하고' 또 '생각하고,연구하고,창조하는' 특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이 지향하는 것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누가 '대학도 산업이다'라고 말하면 '산업도 대학이다'라고,훨씬 진전된 주체적 논리를 대학 스스로 제기해 볼만도 하다. 지금이 대학에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경쟁력있는 세계적인 대학들의 출현,그것이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학 스스로의 의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대학이 '대학의 산업화'를 요구당하지만 말고 능동적으로 '산업의 대학화' 선도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