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수 < 무협 전무.무역아카데미원장 > 한류(韓流)가 흐르던 현해탄에 요즈음 한류(寒流)가 흐르고 있다.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조례안' 통과를 계기로 우리에 대한 일본 극우파의 방자한 도발과 일본정부의 오만한 언행이 극에 달하고 있다. 때마침 한ㆍ일 FTA협상이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는 건 우연의 일치라고 할수 있지만 어찌보면 이는 필연일수도 있다. 모두 우리를 보는 일본인의 인식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한ㆍ일 FTA협상이 벽에 부딪치고 있는 건 양국정부 협상대표들의 역량이나 노력을 넘어서는 문제,즉 양국간의 심각한 인식차이에서 비롯된다. 우리측도 정부간 협상 이전 단계에서 학계의 '스터디그룹'이나 업계간 '비즈니스포럼' 모두 의지가 앞선 나머지 우리의 취약부문(기계·자동차·부품·소재)에 대해 가볍게 지나친 우(愚)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심각한 협상지연의 귀책사유는 일본측에 있다. 그들은 지난 수년간 산ㆍ관ㆍ학의 일사불란한 조율을 거쳐 집요하게 한ㆍ일 FTA의 조속한 추진에 대해 우리측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막상 협상을 시작하고 보니 그들에게 민감한 부문인 농수산물·건설·유통 등 서비스산업,비관세장벽 등에 대해 처음부터 관심밖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렵게 발효시킨 한ㆍ칠레 FTA에서도 우리는 취약부문인 농수산품목들을 대다수 포함했고 이는 대부분의 자유무역협정에 적용되는 일반적 원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측은 농수산부문의 절반정도를 예외로 하자는 비상식적이고 '속보이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한·일 관계가 동반자적 관계로 성숙했고 한류가 양국 국민간 불신의 정서를 씻어냈다고 믿는 우리를 순진하다고 비웃기라도 하는듯 저들은 뻔뻔스런 궤변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일개 지자체의 조례를 앞세워 독도를 강탈하려 덤벼드는 안하무인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한ㆍ일 FTA협상에 임하는 일본측 인식의 저변에 바로 그 오만방자한 인식이 깔려 있을 것이라 예단하면 논리의 비약일까. 우리의 대일 무역적자가 연간 2백50억달러에 육박하고 '65년 이래 누적 적자가 무려 2천3백14억달러에 이르는 상황에서 우리 제조업체가 느끼는 피해의식과 과거사의 앙금이 아직도 짙게 남아있는 우리 국민의 정서를 일본정부와 여론주도층이 모를리 없다. 그런데도 FTA에 임하는 그들은 뼈다귀(농수산물)빼고,고기(비관세장벽 등)빼고 맹물 곰탕을 끓여 뭘 어쩌자는 것인가.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멀리 보면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일본간의 FTA는 두 나라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 줄 상생의 수익모델이 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협상이 재개되고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타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미래 동북아시아,더 넓게는 동아시아가 지역협력체로 결성될 때를 상정한다면, 그리고 거함 중국에 대응하는 전략적 제휴를 위해서도 두나라간 FTA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기 위해선 일본측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98년 10월 두나라 정상(당시 김대중 대통령,오부치 총리)이 공동선언에서 밝혔듯이 '화해와 우호정신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을 위해' FTA를 추진한다면 뼈다귀와 고기는 물론 양념(경제협력)도 듬뿍 넣어 제대로 된 곰탕을 만들어야할 것이다.한ㆍ일 FTA는 일반적인 FTA의 기본내용인 무관세화와 제도적 시장개방을 넘어 최대한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경제협력정신이 배어있는 진정한 파트너십의 큰틀이 돼야 한다. 그래야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뿌리깊은 불신도 씻길 것이다. 한ㆍ일 모두 FTA에 관한한 지각생이고 '외톨이'다. 국제무대에 나가면 양국의 이해관계는 상충보다는 합치쪽에 훨씬 가깝다. 한류 물결이 힘차게 지속되고 더 나아가 문화교류로 이어져 양국 국민의 정서적 앙금을 털어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또하나의 축으로서 한ㆍ일 FTA가 있다. 문화교류와 FTA는 두나라간 결속을 다지는 두 개의 큰축으로서 상승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두나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가는 진정한 친구가 되지 않을까. 오늘의 EU를 함께 탄생시킨 '과거의 앙숙' 프랑스와 독일의 오늘의 모습을 머리에 떠올린다면 과욕이요, 짝사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