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원·달러환율이 또다시 장중 9백90원대로 내려앉는 등 '세자릿수 시대' 본격 진입을 눈앞에 둔 가운데 하루 새 10원 이상씩 오르내리는 등 변동폭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환율 변동요인이 생길 경우 이를 완충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문제로 달러가치가 약세를 보이기 시작한 작년 10월 이후 한국 원화가치는 무려 13.1%나 절상됐다. 같은 기간 중 일본 엔화(절상률 5.4%) 대만 달러화(5.8%) 싱가포르 달러화(3.8%)에 비해 2∼3배나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아시아 경쟁국에 비해 낮았고,다른 국가들은 금리를 올리는 추세 속에 한국은 콜금리를 내리거나 동결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같이 급격한 원화가치 절상(원·달러 환율 하락)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 원인은 외환정책이 환율 방어를 위한 시장개입에서 시장에 맡기는 쪽으로 바뀐데다,기존 원·엔 시장을 포함한 이종통화시장이 활성화되지 않거나 개설되지 않음에 따라 환율변동 요인이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집중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연간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6천억달러를 넘는 점을 감안하면 하락 압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오는 5월1일부터는 중국의 환율제도가 사실상 복수통화바스켓제도로 변경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수출구조도 중국시장이 23%에 달해 미국의 16%를 훨씬 상회할 만큼 다변화된 상태다. 따라서 이 같은 국내 외환시장 여건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면서 원·달러 환율에 집중되는 하락압력을 완충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원·엔 직거래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유로화 등 다른 이종(異種)통화시장도 개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진우 농협선물 금융공학실장은 "현재 국내 외환시장 여건상 최소한 원·유로화 직거래시장은 즉시 개설해야 한다"며 "앞으로 중국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는 상황에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원·위안화 직거래시장 개설 방안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이종통화시장의 필요성을 느껴왔음에도 활성화되거나 개설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원화의 국제화,보유외환 다변화 등 외환시장의 인프라가 취약한 점이 주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특히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훈련이 안돼 있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다. 따라서 앞으로 엔화 이외의 다른 이종통화시장을 개설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훈련된 외환시장 참여자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내외환시장의 거래규모를 늘리고 환율결정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원화의 국제화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원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 급선무다. 인접국가와의 공동화폐 도입 등도 장기적인 구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도적으로 달러화 일변도의 외화운용 관행을 개선시켜 달러화 이외의 이종통화에 대한 수요를 늘려야 한다. 한상춘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