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와 재판, 형집행 등 형사절차의 모든 과정을하나의 사이버 네트워크 안에서 처리하는 `통합형사사법체계'는 국민 법생활에 일대변혁을 가져올 전망이다. 통합형사사법체계가 시행되는 미래의 국민 법생활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가상사례를 통해 미리 체험해본다. ▲ 조서없는 수사= 2010년 3월15일 새벽 4시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회사원 최모씨는 승용차를 몰다 서울 청담동 도로에서 경찰의 음주단속에 적발된다. 경찰은 음주측정기 및 지문인식기가 달린 첨단 현장조사장비를 꺼내 최씨의 지문을 채취한다. 몇초후 장비의 액정화면에는 최씨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 신상정보와 최씨의혈중 알코올 농도 0.155%가 표시된다. 만취상태다. 최씨는 2007년 음주운전으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전력도 있다. 차에서 내린 최씨는 경찰의 음주사실 등을 캐묻는 질문에 강력히 부인하지만 경찰의 화상카메라에는 최씨가 비틀거리며 혀꼬인 목소리로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그대로 녹화된다. 그런데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던 최씨가 갑자기 차로로 뛰어들어 급정차한 운전자 김모씨에게 마구 행패를 부리는 돌발상황이 발행한다. 곧 경찰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씨는 김씨의 차 범퍼를 발로 차 30만원의 피해를 입혔다. 경찰은 즉석에서 피해자 김씨의 파손된 차량을 촬영하고 김씨의 피해자 진술을녹화한다. 김씨는 진술을 마친 뒤 현장에서 바로 귀가했지만 최씨는 폭행 혐의까지더해져 강남경찰서 형사계 대기실에 수용된다. 경찰은 `통합형사사법체계'에 접속해 최씨를 입건하고 최씨의 범죄사실과 피해자 김씨의 피해 상황 등이 담긴 동영상 자료를 올린다. ▲ e-구속영장 = 3월15일 오전 9시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 이모 검사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전자송치된 음주운전 사건기록을 들여다 본다. 전날 퇴근시각 이후부터 지금까지 신규 접수된 자동차 사고 관련 사건기록은 16건. 이중 새벽 5시10분에 접수된 최씨 사건이 이 검사의 눈길을 끈다. 경찰이 업로드한 사건 현장 동영상 자료를 본 이 검사는 최씨의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 경찰에 최씨에 대한 구속수사 지휘를 내리기로 결정하고 화면의 `구속지휘'버튼을 누른다. 그 시각 잠에서 깬 최씨는 경찰로부터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는 말을듣고 곧 집에 있는 아내 한모씨에게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한다. 남편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은 한씨는 바로 `통합형사사법체계'에접속해 남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바로 국선변호사를 신청한다. 즉석 인터넷 추첨 결과 작년에 사법연수원을 나온 구모 변호사가 변호를 맡게됐다. 한씨는 남편의 음주운전 및 폭행 사건 내용이 담긴 경찰의 증거 화면을 다운받아 살펴보고, 바로 구 변호사의 메일로 전달한다. 그날 오후 1시 구 변호사는 경찰서 유치장으로 옮겨진 최씨를 만난다. 이미 최씨의 범행 장면을 확인하고 온 구 변호사는 최씨에게 혐의를 시인하고 무조건 피해자 김씨와 합의하라고 조언한다. 그 시각 한씨는 피해자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합의해 줄 것을 간절히 요청한다.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김씨지만, 변변찮은 살림살이에 아직 신혼인 최씨 부부를 생각해 선처해 주기로 마음먹고 `통합형사사법체계'에 접속해 "최씨측과 합의해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메모를 남긴다. ▲ 사이버 구속영장 실질심사= 그날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황모 판사는 신규 접수된 최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파일과 경찰의 증거 화면을 검토하고 영장을 청구한 이 검사와 피의자 최씨를 호출한다. 10여분 뒤 화상대화창에 모습을 나타낸 이 검사는 최씨의 죄질이 불량하고 동종전과가 있어 높은 형량이 예상되는 만큼 구속수사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최씨도 경찰서에 설치된 화상 카메라를 통해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 도주우려가 없고 피해자와 합의도 했다며 선처를 호소한다. 구 변호사도 휴대전화 화상통화를 통해 최씨를 변호한다. 화상통화가 끝난 후 황 판사는 최씨에 대한 영장 발부와 기각 여부를 두고 고심하던 중 최씨의 참고 자료에서 과거 폭행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불응하고 도망한 전력을 확인한다. 결국 황 판사는 최씨가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 화면의 `발부' 버튼을 눌러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최씨는 바로 서울구치소에 수용된다. ▲ 조서없는 재판= 인터넷을 통해 남편 최씨의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알게 된한씨는 남편의 사건이 바로 기소돼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성모 판사에게 배당된사실을 확인한다. 첫 기일은 이틀 후인 17일 오후 2시. 한씨는 바로 성 판사에게 남편 최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e-메일을 보내고 남편의보석을 신청한다. 3월17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26호 법정. 최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다. 성 판사는 이미 컴퓨터를 통해 최씨의 범행 당시 모습이 담긴 경찰측 증거물을 열람한상태다. 최씨는 음주운전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나 피해자 김씨가 먼저 자신을 때렸다고 주장하면서 폭행 혐의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성 판사는 재판석에 부착된 모니터에 피해자 김씨의 진술과 범행 당시 상황이담긴 경찰의 증거 화면을 불러내 화면을 더욱 면밀히 살펴본다. 그러나 일부 화면이 명확하지 않아 성 판사는 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사이트에 접속, 사건번호를 입력하고 관련 자료의 영상판독을 의뢰한다. 30분 뒤 진위는밝혀질 것이다. 이날 공판의 모든 과정은 법정에 설치된 비디오를 통해 녹화됐다. 성 판사는 심리를 종결하고 다음날 오전 10시 판결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 사이버 면회= 3월18일 오전 10시 아내 한씨는 집에서 초조히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불안한 마음으로 남편의 기록에 접속했지만, 불행히도 남편은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즉각 남편이 수감된 서울구치소에 면회신청을 하고 한시간 뒤 화상 모니터를 통해 남편을 만난다. 남편은 아내 한씨와의 면회가 끝나면 구 변호사와 접견을 통해 항소장 내용을상의할 계획이다. 한씨는 면회 종료 후 구치소 매점 사이트에 접속, 우유와 고추장을 구입해 남편에게 보낸다. 한씨는 구 변호사가 못미더웠다. 인터넷에 접속해 변호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고 사건 내용이 담긴 동영상을 첨부파일로 업로드했다. 한시간도 안돼 새로운 변호사가 메일을 보낼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bana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