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보유 외환 다변화 발표로 촉발된 소위 '한은쇼크'가 미 정치권과 금융계에서 계속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이로 인해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아시아중앙은행의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됐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미 의회의 우려=2일 그린스펀 의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미 하원 예산의원회 청문회에서도 한은발 금융쇼크에 대한 우려가 표명됐다. 존 스프래트 민주당 의원은 "미국에 돈을 꿔준 외국인들이 달러화 보유가 충분하다고 판단,다변화를 위해 다른 통화로 옮겨가는 때가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이에 대해 "물론 그럴 수 있으나 현재 진행 중이라는 증거는 거의 없다"며 현재형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앞으로 수년 후엔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이라면서도 한은쇼크를 의식한 듯 "최근 일어나고 있는 것이 외환보유액 구성의 미세한 조정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해명했다. ◆이례적 재정적자 경고=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날로 늘어가는 재정적자에 대해 전에 없이 강도 높게 경고했다. 그는 "미국의 재정은 전면적인 적자 감소 방안을 실시하지 않는 한 개선되기 어렵다"며 "지속적인 적자는 성장 동력을 갉아먹기 때문에 큰 우려가 아닐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린스펀은 "세수 증가를 예상해 예산을 다루려 할 경우 경제성장 및 세원에 리스크가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재정적자가 결국 '한은쇼크'와 같은 사태의 원인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시아 눈치보는 신세=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아시아 주요국들이 엄청난 규모의 달러를 보유,그린스펀의 입지를 위축시키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얼마 전 한·중·일 3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간에 구성된 아시아 벨라지오그룹(ABG)은 역내 미 국채 보유액이 무려 1조1천억달러가 넘는다는 점에서 그린스펀 의장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페섹은 세계 4위 외환 보유국인 한국은행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다른 아시아 중앙은행들도 같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