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성복서와 늙은 트레이너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가 올해 아카데미상 최고의 작품으로 떠올랐다.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28일(한국시간)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7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주요 부문상 4개를 석권했다. 반면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에비에이터'는 주요 부문 중 여우조연상(케이트 블란쳇)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1992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감독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받았던 75세의 노배우 이스트우드는 이번에도 연륜이 묻어나는 묵직한 연출로 감독상과 작품상을 함께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여성 복서의 감성을 실감나게 연기한 힐러리 스웽크는 이번 수상으로 '소년은 울지 않는다'(2000년)에 이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배우가 됐다. 모건 프리먼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쇼생크 탈출' 등으로 아카데미상에 네 번 도전한 끝에 영광을 안았다. '에비에이터'는 케이트 블란쳇의 여우조연상에 이어 의상 미술 촬영 편집 등 5개 부문상을 수상했으나 주로 기술상에 국한됐기 때문에 스콜세지 감독은 여전히 오스카상과는 인연이 없는 거장으로 남게 됐다. 남우주연상은 '레이'에서 천재 가수 레이 찰스 역을 맡았던 흑인 배우 제이미 폭스가 차지했다. 이로써 남우조연상과 주연상이 모두 흑인 배우에게 돌아가는 이변이 연출됐다. 각본상은 실연한 남녀가 아픈 기억을 지우기 위해 벌이는 해프닝을 그린 SF코미디 '이터널 선샤인',각색상은 와인과 사랑의 맛을 비교하도록 이끄는 코미디 '사이드웨이'가 각각 차지했다.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박세종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버스데이 보이'는 아쉽게 탈락했다. 이날 시상식을 진행한 코미디언 크리스 락은 부시 대통령을 조롱해 할리우드와 백악관의 불편한 관계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그는 "적자 규모가 70조달러나 되는 데도 전쟁을 일으켜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을 전쟁터에 보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