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바이어가 진화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면 입점 업체 넣고 빼기가 주 업무였는데 최근에는 시장조사,상품기획,인테리어,물류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 봄 매장 개편을 앞두고 앞서가는 바이어 3인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남성팀 박인재 부장은 남성복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딴 '박사 바이어'다. 그는 신사복 박사 실력을 토대로 '되는 장사'를 제안하러 협력업체를 일일이 찾아다닌다. '시커먼 양복'만 가득한 남성복 매장은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것.2년간 국내 남성복 업체 경영진을 설득해 한 번에 업체 7곳으로부터 2억∼3억원 상당의 새 상품군 개발 동의를 얻어 내기도 했고,업체 디자이너·패턴사와 수개월간 컨셉트를 조율하기도 했다. 기존의 상품진열로는 다양해지는 고객의 니즈를 맞추기 어려워 '컨설턴트'로 직접 나선 것.그 결과 18일 오픈하는 1천평 규모의 서울 강남점 남성복 매장은 정장 비중이 70%나 줄고 꽃무늬 남방에서 속옷까지 새로 개발한 상품들이 채워져 선보인다. 롯데백화점 배우진 남성복 바이어는 해외 발품 팔기를 마다 않는 케이스.이탈리아를 돌아 다니며 직접 남성용 셔츠를 사오거나 현지 업체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거래를 텄다. 해외 브랜드는 그동안 이미 알려진 유명 브랜드를 중심으로 들여오는 게 관례여서 '무명의 해외 상품을 들여오는 것은 모험'이라는 것이 배 바이어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 시즌 해외 상품들을 모아 '라비엣'이라는 직영매장을 낸다. 통관업무까지 일일이 챙긴 배 바이어는 "한 두시즌 뒤처지게 마련인 국내 패션 트렌드를 해외와 같은 속도로 맞추려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가정용품 담당 김용환 바이어는 '천장에 업체를 입점시킨' 독특한 아이디어의 주인공.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명 용품에 대한 수요는 점점 많아지는데,막상 입점 업체는 50평 이상이 아니면 오픈이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매장 효율성을 생각하자면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상황.김 바이어는 고민 끝에 가정용품 매장 전체 천장에 조명을 진열하겠다고 업체를 설득시켰다. 3월에 오픈하는 매장이 이렇게 탄생한 '힐로라이트'조명 매장이다. 김 바이어는 "예전처럼 입점대상 업체들을 평가하기에만 바빴다면 이번 매장 오픈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제는 고객 니즈와 함께 입점 업체의 주문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바이어들이 '영역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백화점 업태의 위기감과 무관치 않다. 더이상 가격 경쟁이나 기존 업체 관리만으로는 포화에 이른 백화점 업계 내에서나,타 업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박인재 부장은 "그 매장만의 독특한 상품을 끌어올 수 있는 것은 바이어이고,이것이 진정한 '바잉 파워'"라면서 "이제 규모가 아닌 바이어의 경쟁력에 따라 백화점의 경쟁력이 결정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송주희 기자 y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