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회계캠페인(12)]적자에도 빚얻어 세금내는 해운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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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실제로 수천억원대 이익을 냈지만 손익계산서에는 수천억대 손실로 나타나고, 반면 실제론 엄청난 손실을 냈으나 재무제표에는 엄청난 이익을 낸 기업으로 나타나 돈을 빌려서 세금을 내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회사가 거액의 이익으로 돈이 많을 땐 세금을 낼 일이 없다가, 정작 엄청난 손실로 경영난에 허덕여 현금이 필요할 땐 세금까지 납부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외항해운업계에선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기업회계기준에 따라 제대로 회계처리를 했을 때 일어난다.
현행 기업회계기준에서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화폐성외화자산과 화폐성외화부채는 대차대조표일 현재의 적절한 환율로 환산한 뒤, 장부상의 금액과 환산한 금액의 차이를 외화환산이익이나 외화환산손실이라는 계정을 통해 당기손익으로 처리토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에선 "외항해운업은 대다수 거래가 해외에서 달러로 이뤄지고 있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이 적은데도, 회계기준이 대부분 달러를 쓰는 나라의 국제기준에 맞춰져 문제가 많다"며 "우리 외항해운업에 맞는 별도 회계기준을 만들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국제기준에 맞춘다는 기업회계기준으로 오히려 기업경영실적의 투명성이 왜곡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외항해운업 회계기준 뭐가 문제인가
A해운회사의 경우 지난 99년의 경우 경상이익이 796억원에 불과했으나 가공의 외화환산이익이 4133억원이 발생해 장부상 경상이익은 4929억원으로 부풀려졌다.
반면 2000년에는 1149억원의 경상이익이 가공의 외화환산손실 9345억원으로 인해 8196억원의 경상손실로 뒤바뀌었고, 2001년엔 경상손실이 666억원에 그쳤으나 외화환산손실 4543억원이 겹쳐 장부에 나타난 손실은 5209억원이었다.
또 다른 해운회사인 B사는 이에 더해 지난 99년 환율하락으로 인해 수출물동량이 감소해 영업이익이 전년도에 비해 27%나 감소했지만, 가공의 외화환산이익 5404억원으로 경상이익 4929억원이 발생함에 따라 법인세도 크게 부담해야 했다.
특히 이 회사는 뒤이은 2000년과 2001년에는 계속적인 환율상승으로 인해 수출물동량이 증가해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발생했지만, 가공의 외화환산손실로 인해 장부상에는 5209억원 손실기업으로 나타나 세금부담을 피할 수 있었다.
해운업계의 손익이 환율하락→수출물동량감소→영업이익감소(유동성부족)→외화환산이익발생→경상이익발생→법인세증가, 또는 환율상승→수출물동량증가→영업이익발생(유동성풍부)→외화환산손실발생→경상손실발생→법인세감소의 현상이 발생하는 것.
현행 기업회계기준에서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화폐성외화자산과 화폐성외화부채는 대차대조표일 현재의 적절한 환율로 환산한 뒤, 장부상의 금액과 환산한 금액의 차이를 외화환산이익이나 외화환산손실이라는 계정을 통해 당기손익으로 처리토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외화환산대상 화폐성 자산과 부채는 화폐가치가 변동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화폐액으로 애초에 결정돼 표시되는 자산과 부채로, 대부분의 채권과 채무, 현금예금이나 투자자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에선 "어차피 대다수 거래가 해외에서 이뤄져 채권과 채무가 모두 달러로 거래돼 환율변동에 따른 회사 위험이 없는 만큼, 실제영업실적과는 상관이 없는 환율변동이 회사 손익성적표를 좌우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원화로 거래되는 국내회사가 재무제표에 원화환산이익이 없는 것처럼, 미국 등 달러로만 거래하는 나라에선 달러가치 변동에 따른 환산손익이 손익계산서에 나타날 리 없다.
이에 따라 외국의 경우는 회사영업실적이 그대로 손익계산서에 나타나지만, 우리의 경우는 회사영업실적과는 정반대로 나타나 국내외 투자가의 눈에비친 재무제표상의 경영실상은 그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게 나타나는 것.
해운업계는 이와 관련 "외항해운업도 대다수 거래가 특성상 달러로만 거래되는 만큼 외화환산손익이 매년 당기손익에 반영될 필요가 없고, 올해의 환산이익은 내년의 환산손실로 상쇄시켜도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톤세제 도입됐어도 문제는 여전
우리나라 해운업계에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올해부터 톤세제도가 도입돼 적용된다. 톤세제도는 해운회사의 실제영업실적과는 상관없이 선박의 물류운반실적에 비례해 세금이 매겨지는 제도.
해운회사는 올해부터 톤세제와 일반 법인세 중에 선택적으로 한가지 방법을 골라 적용할 수 있으며, 한번 선택한 방법은 5년간 바꿀 수 없다.
이에 따라 톤세제를 선택한 선박회사의 경우는 올해부터 법인세를 낼 때 외화환산손익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현상은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학계와 해운업계에서는 톤세제가 도입되더라도 기업회계기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회사가 대외에 공시하는 재무제표는 기업회계기준에 따라 작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장기업의 경우 일반투자자들의 주식투자동기를 오도하게 되고, 국제기준에 맞춘다는 기업회계기준으로 오히려 기업경영 실적의 투명성이 왜곡되는 현상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해운업계 관계자는 "거액의 외화환산손실이 발생할 경우 손실로 인한 자기자본 감소로 부채비율이 크게 높아져 기업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된다"며 "해운업은 선박확보를 위한 해외자본차입에서 이 때문에 높은 이자율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시장에서는 실질적으로 환위험 회피를 위한 시장이 매우 작으며, 설사 이용할 수 있더라도 그 거래비용이 너무 높다"며 "회계기준의 전환이 없는 한 달리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학자들은 어떻게 보나
회계학자들 역시 외화환산회계에 대한 현행의 일반적 회계기준이 경제적 실질과 부합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산업으로 외항해운업을 들고 있다.
회계학자들은 "해운거래로 인한 대부분의 현금창출과 현금지급이 자국통화인 원화가 아닌 달러 등 세계적인 통화로 이뤄지고 있어, 현행 기업회계기준의 외화환산기준은 해운업계의 재무제표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대학교 허영빈 교수와 경희대학교 강병민 교수 등은 '거래통화가 외화인 기업들의 특수성을 고려한 외화환산기준의 개정방향'이란 제하의 연구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해운업계 회계기준은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에게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회계목적과 상충된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기업들에 적용하는 외화환산기준을 외항해운업체에 획일적으로 적용토록 하면, 재무제표에 환율변동의 영향을 과대계상하게돼 결국 기업의 실질적인 재무상태와 영업실적을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결과가 된다는 것.
허 교수 등은 "재무제표 왜곡현상이 기업의 자금조달에 금융비용을 과도하게 부담하게 하거나 기업에게 세금을 과도하게 부담하게 하는 등 기업경영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왜곡된 회계정보가 기업에 부당한 부담을 지게한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허 교수 등은 "단기적인 대안으로는 장기항목의 외화환산손익을 이연시켜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자산재평가제도를 재도입하거나 외화환산손익을 관련자산에 가감하는 방법의 사용, 또는 기능통화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조세일보 / 이동석 기자 dslee@jose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