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성작가인 소설가 필립 클로델의 장편소설 '회색 영혼'(미디어2.0,이세진 옮김)이 번역돼 나왔다.


죄와 죄의식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한 이 작품은 2003년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르노도 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엘르문학상'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소설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프랑스 북동부의 한 작은 마을.불과 몇 km 떨어지지 않은 곳에 격전지가 있고 포화 소리가 들려오지만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남의 일이다.


주민들은 군수물자를 납품하는 공장에서 일하기만 할 뿐 겉으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신경 쓰지 않는다.


어느날 아침 '벨 드 주르'라는 이름의 열살짜리 소녀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면서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마을의 경찰관으로 주인공인 '나'는 모든 일을 팽개치고 이 사건에 매달리지만 좀처럼 단서가 잡히지 않는다.


얼핏 추리소설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사건'에 얽힌 사연들과 차츰 밝혀지는 주인공의 개인사,사건 담당 데스티나 검사를 포함한 등장 인물들의 과거사가 뒤얽히면서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회색 영혼'은 또 전쟁소설은 아니지만 작가의 독특한 시각으로 전쟁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죄의식은 도처에 깔려 있다.


주인공이 그러하듯 비겁함은 이들의 일상이 돼 버린다.


하지만 이들도 자기 나름의 전쟁을 치르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