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밸리가 다시 '북적' .. 큰손.기관 투자문의 급증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올들어 코스닥이 급등세를 타고 벤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비싼 임대료 등을 이유로 일부 벤처기업들이 떠나기도 했지만 아직도 이곳은 넥슨 엔씨소프트 NHN 다산네트웍스 비트컴퓨터 등 간판 벤처기업들과 KTB네트워크 한국기술투자 스틱IT투자 우리기술투자 등 대표적인 벤처캐피털들이 몰려 있는 벤처의 메카다.
기관투자가들은 요즘 발빠르게 이곳의 벤처캐피털들을 찾아 투자조합 출자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편 벤처캐피털들은 '대박' 기업을 캐내기 위해 열심히 다리품을 팔고 있다.
월요일인 지난 24일 저녁 7시 벤처기업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 부근 K일식점.지난해만 해도 이 식당은 직장인들의 목·금요일 저녁회식 외에는 별다른 예약을 받지 못했으나 최근에는 예약을 안하면 주초에도 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10여개의 방을 갖고 있는 이 식당에서 벤처기업 투자 관련 비즈니스 모임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식당 박모 사장은 "지난해 1백만∼2백만원에 불과하던 하루 매출이 최근 들어 1천만원대로 껑충 뛰었다"며 "벤처활성화 덕분에 경기가 풀리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은행 투신사 등 기관투자가들도 테헤란밸리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 벤처 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기관투자가들이 창업투자회사 투자담당자들에게 전화해 투자를 문의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있다.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대박 행진' 대열에서 제외될 것을 우려해서다.
스틱IT투자의 도용환 사장은 "정부가 작년 12월 말 벤처활성화 대책을 추진한다고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꿈쩍하지 않던 기관투자가들이 시장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이제는 국민연금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기 전에 자신들의 돈을 받아달라고 아우성"이라고 말했다.
개점휴업 중이던 벤처캐피털들도 투자를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이에 따라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인 KTB네트워크의 벤처기업 투자팀장들은 요즘 투자를 받으려고 온 벤처기업 관계자들로부터 사업설명을 듣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일주일에 한개 꼴이던 기업들의 프레젠테이션이 최근엔 하루 평균 한개 꼴로 늘었다.
투자결정을 하려면 사업설명회->심사역들의 전문 실사->투자심사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해야 한다.
따라서 벤처기업 투자팀장들은 눈코 뜰 새 없이 지내고 있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과거 벤처거품 시절 경험이 있어 투자를 당장 대폭 늘리지는 않겠지만 주식시황을 봐가며 얼마나 확대할 지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최근의 움직임이 벤처거품의 악몽을 재현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기술투자의 벤처투자팀 관계자는 '진정한 벤처캐피털리스트'라고 자칭하는 명동의 한 사채업자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지난 99~2000년 결성한 투자조합 중 처치 곤란한 것을 일부 사주겠다는 오퍼를 받은 것.
투자한 펀드 가운데 당장 기업공개 등이 힘들어 현금화가 어려운 것을 후려친 가격에 사는 '부실자산인수펀드'를 자임한 셈이다.
이 관계자는 "2000년 이후 자취를 감춘 장외투자자들로부터 다시 이런 문의전화가 오고 있다"며 "일명 '선수'라고 불리는 큰손들의 이런 제안이 분명 상승장을 뜻하는 것 같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처럼 벤처투자가 과열양상을 띠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