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官治를 넘어 法治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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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호 < KDI 명예연구위원 >
정부가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은 시민의 자유와 재산권 보호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는 정부에 의한 시민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가 빈번히 일어났다.
여기서 '재산권'은 동산·부동산에 대한 권리만이 아니라 한 개인에 속한 모든 것,즉 노동력과 생명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사유재산제도를 가진 나라에서 무슨 당치않은 말이냐는 사람이 많을 것이나, 정부가 최우선 순위의 할 일을 등한히 한 채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게 마련인 관치에 몰두한 결과이다.
관치란 정부가 불필요하게 시장에 간섭해서 경제활동들의 크기 방향 가격을 바꿔 놓는 행위를 가리킨다.
특정인·특정기업에 대한 은행대출의 종용이나 억제,그리고 특정산업 진입 제한 내지 금지,특정산업의 육성 혹은 지원,수입(輸入)의 제한 내지 금지,가격 인상 억제 등등이 관치 행위의 예이다.
이는 정부가 막강한 힘을 휘둘러 개인의 자유·재산권 및 그 행사를 침해하고 제한하는 것이며 특정인을 시장경쟁의 승자로 만들기도 하고 선별적으로 처벌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성과를 높이려는 것이 관치의 목적이겠으나 그 목적 달성이 장기적으론 불가능할 뿐 아니라 관치에 따르는 여러 가지 폐해가 현재 우리 사회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폐해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다.
관치 아래서는 정부의 막강한 힘을 빌리거나 정책에 영향을 줌으로써 기업이 쉽고 확실하게 돈을 벌수 있으므로 치열한 시장경쟁을 통해 돈을 버는 방법에만 의존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 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정부에 로비를 벌이고, 이것이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정경유착의 당사자들은 기득권층을 형성하게 되는데,이는 사회구성원들을 기득권층과 소외계층으로 갈라놓고 소외계층들로부터 신분상승의 기회마저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나라가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경제가 해방 이후 줄곧 관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치경제를 곧 시장경제로 인식하고 관치경제의 병폐를 시장경제의 병폐로 인식하고 있다.
진보 내지 좌파 세력들은 이런 인식에서 출발해 체제 수정을 위해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보수 내지 수구 세력들은 관치의 폐해에도 불구, 성장을 위해선 기업의 애로를 타개해주고 기업의 이익과 상충하는 이익을 가진 집단은 정부가 나서서 견제해줘야 하며 이것이 결국 소외계층에도 득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좌우 분열은 체제 선택의 문제를 일으켜 우리 사회를 둘로 갈라놓고 서로 싸우게 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법적으로 볼 때 정부가 시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해왔다는 데 그 근본 이유가 있고 경제적으로 보면 시장경제에 비교할 수 없게 열등한 관치경제에 정부가 몰두했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가 관치를 버리고 법치를 확립해야하는 당위가 여기에서 나온다.
법치의 근본은 시민의 자유와 재산권 보호이며 법률에 정해진 바 외에는 누구의 침해로부터도 보호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 내용은 '누구'에 정부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 법치의 근본이 바로 설 때 우리나라는 기본이 돼있는 나라,사람답게 살수 있는 나라가 될수 있다.
또한 그래야 우리 경제가 관치를 벗어나 진정한 시장경제로 다시 태어날수 있고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도 풍요한 사회가 될수 있다.
법치의 근본이 바로 서면,정부의 힘을 업고 사업을 하거나 동료 시민에 대한 사기·횡령·배임을 통해 돈을 버는게 어려워지므로, 사회구성원들은 자신의 물적자산 재능 노력 시간을 동원해 소비자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개인으로는 시장경쟁에서 승자가 되는 지름길이고 한 나라로서는 경제성장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알아듣고 제대로 수행하는 정부를 세울 때 우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관치 청산-시장경제만이 살 길이다'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