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아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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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인간을 컴퓨터와 구분짓는 것 중 하나가 어리석음이라든가.
언제나 '올해엔'으로 출발해 '올해도'로 끝난다.
어느 해 할 것 없이 일도 많고 탈도 많지만 올 한 해는 유독 어지럽고 신산스러웠다.
대통령 탄핵,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수능시험 부정에 아시아 남서부 지진해일까지 온갖 일들이 몰아닥쳤다.
조만간 괜찮아지리라던 경제는 악화일로를 치달아 '이태백 사오정'이란 끔찍한 말을 만들었고,세대와 계층간 갈등은 생각이 달라도 이해하고 설득하기보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니 무조건 깨부순다는 사태로까지 치달았다.
오죽하면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무리끼리 모여 다른 자를 공격한다)'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을까.
정치 사회 곳곳의 당동벌이식 행태는 불안함을 낳고,불안함은 불확실성을 낳고,불확실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력감과 냉소주의를 안겨줬다.
'이러다 장차 어떻게 되는 걸까' 아득해 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톨스토이 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천사 미하일이 말했듯 인간은 본래 한 치 앞의 일도 알지 못한다.
갑신년이 저문다.
새해에도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불확실성 또한 쉽사리 해결되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만유인력의 법칙과 달리 물질의 70%가 척력을 지닌다는 사실의 발견에서 보듯 부동의 진리는 드물고 명약이 부작용으로 폐기되는 수도 잦다.
분명한 건 인간은 방황 속에서 길을 찾고,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사실이다.
원인이 뭐든 무기력과 냉소주의는 인간의 영혼과 열정을 빼앗아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암을 극복하고 세계 사이클대회를 석권한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은 투병을 통해 '당황스러운 상황을 무시하는 능력과 불평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는 힘'을 배운 결과 무모하거나 불안정하지 않고 기술과 방법 모두 세련돼졌다고 털어놨다.
꿈은 이뤄질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올바른 방향 설정과 지치지 않는 노력이 수반될 때 가능하다.
끝은 늘 새로운 시작과 맞닿아 있는 법.갑신년의 고통이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었기를, 을유년 새해엔 우리 모두 불안과 증오가 아닌 믿음과 화해로 살아가게 되기를 빌어본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