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인재경영의 비밀] <1> 베일 속의 싱크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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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법인에서 파악한 현지 휴대폰시장의 여건은 본사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A사의 공세가 만만치않아요.
새로운 대응 전략을 마련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삼성 미래전략그룹의 로베르토 마우로 글로벌 전략 담당 컨설턴트) "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데 새로운 전략을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삼성전자 임원)
"지원만 제대로 해준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오후 회의때 자세한 사항을 논의하도록 하시지요"(미래전략그룹 피터 로스타스 컨설턴트)
지난 3일 서울 중구 태평로 빌딩 18층에 위치한 삼성 미래전략그룹 사무실.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 중장기 전략 수립을 맡고 있는 IMD MBA출신의 마우로씨가 한쪽 회의실에서 4명의 삼성전자 휴대폰담당 직원들과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다.
그는 해외 경쟁업체들의 동향 파악과 대책 수립을 위해 얼마전 유럽출장을 다녀왔다.
회의실 밖에선 하버드 MBA출신의 또다른 외국인 마크 뉴먼씨가 벤치마킹 대상인 해외 전자업체관련 최신 뉴스를 찾기위해 외국 전문서적과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는 벤치마킹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미래전략그룹은 세계 어느 기업에서도 볼 수 없는 삼성만의 독특한 조직이다.
25명 전원이 하버드 와튼 인시아드 등 세계 톱10 MBA를 나온 외국인이란 점에서 그렇다.
연령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주류로 사실상 삼성의 젊은 '싱크 탱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래전략그룹은 지난 97년 7월 이건희 회장의 특별지시로 설립됐다.
이 회장은 당시 "급변하는 글로벌 사업환경에 적응하려면 신선한 감각과 우수한 역량을 갖춘 외국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우수 외국인력들을 2∼3년간 핵심 포스트에 근무시켜 그룹의 사업문화를 전수한 뒤 해외사업을 책임질 국제관리자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그룹은 그동안 그룹 차원의 미래전략을 수립하는 업무와 함께 전자 생명 물산 등 각 계열사들이 요청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기밀 유출 우려 때문에 외부 컨설팅 업체에 맡길 수 없는 핵심 프로젝트는 어김없이 이들의 몫이다.
몇년 전 방카슈랑스 도입을 앞두고 해외 선진국의 사례와 시사점 등을 꼼꼼하게 정리해 넘긴 것이 좋은 사례다.
신규사업 개발에서부터 마케팅 전략 수립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해법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각 계열사들로부터 컨설팅 의뢰도 끊이질 않는다.
삼성전자 외국인 임원 1호인 데이비스 스틸 상무를 비롯 22명의 전직 미래전략그룹 컨설턴트들이 각 계열사의 구애 끝에 전자 증권 화재 SDS 등으로 옮겨갔다.
배병률 미래전략그룹 상무는 "미래전략그룹은 '인재 제일주의'와 '글로벌 경영'이란 삼성의 화두를 실천하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미래전략그룹을 육성하기 위한 시스템은 상당히 체계적이다.
한해 6천명에 달하는 세계 10대 MBA 졸업자들의 이력서를 일일이 검토한 뒤 2백여명에게 설명회 안내장을 보낸다.
지난 2000년만해도 하버드에서 기업설명회를 하면 10∼15명이 참석하는데 그쳤지만 올해엔 1백20여명이 몰렸다.
그만큼 해외무대에서 삼성의 위상이 높아진 셈이다.
현지에서 이뤄지는 1차면접은 오로지 인성만을 따진다.
한국과 삼성,그중에서도 미래전략그룹에 얼마나 잘 적응할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1차 면접이 끝나면 60명으로 대상자가 추려진다.
본격적인 실력 테스트는 이때부터다.
'삼성전자 휴대폰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식의 구체적인 질문을 준 뒤 얼마나 논리적으로 이를 해결하는지 검증한다.
삼성은 2차면접을 통과한 20여명에게 입사를 제안하고,이들 중 12∼13명 정도가 최종 입사한다.
그룹내 공용어는 물론 영어다.
이들과 함께 근무하는 17명의 한국인 스태프들도 어김없이 영어만 사용한다.
이 팀의 장원영 대리는 "하루종일 근무하다보면 여기가 한국이란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