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IB(투자은행)부문에서 국내 증권회사를 우대키로 한 것은 외국 대형 증권사의 M&A(기업 인수.합병)시장 '싹쓸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권에서 씨티뱅크 HSBC의 진출,보험시장에서 ING 푸르덴셜 AIG 등의 부상으로 국내 은행과 보험사가 위협받고 있는 마당에 증권 영역에서마저 외국계의 IB 독식이 이대로 지속되다간 금융산업이 외국계에 통째로 잠식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정부 내에서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외국계만 IB를 전담한다면 국내 기업의 내부 고급정보가 유출돼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IB 능력을 키워야만 이 같은 문제점이 해소될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IB시장은 외국계 독무대 지난 2002년부터 최근까지 3년동안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 금융회사나 기업을 매각한 것은 12차례였다. 이 중 국내 증권회사가 주간사로 선정된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면 외국계가 단독으로 선정된 경우는 다섯 차례(41.6%)에 이른다. 외국계가 국내 증권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공동으로 주간사에 선정되더라도 국내 증권사는 사실상 '들러리'에 불과했다. 일은 비슷하게 하더라도 M&A 성사 수수료를 외국계가 80∼90% 이상 챙겨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하이닉스 해외DR(주식예탁증서) 발행 주간사 선정 등 민간 부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증권사들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외국계가 가져간다"는 볼멘소리를 할 만한 상황이었다.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삼성증권 사장 재직 시절 "외국계가 글로벌 네트워크와 노하우에서 앞선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그러나 기회를 줘야 국내 증권사도 IB를 키우든지 말든지 할 것"이라고 지적했었다. ◆무엇을 바꾸나 정부는 내년부터 국내 증권산업 기여도를 주간사 선정때 주요한 잣대로 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외국계가 M&A나 채권 매각때 단독입찰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국내 증권사와 짝을 맺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도 수수료 배분 비율을 주요 판단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국내사가 수수료를 많이 가져가게 하며,동시에 일도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우건설 매각 주간 컨소시엄인 씨티·삼성의 경우 5 대 5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안다"며 "향후 국내 증권사의 몫이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IB시장 및 증권업계에 미칠 영향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외국계 증권사가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항의할 소지는 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고르는 것은 집 주인"이라는 비유를 들어 일축했다. 외국계는 결국 정부 의도대로 IB시장 독점을 내놓을 수밖에 없으며,매력적인 국내 IB시장에 계속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對)한국 투자를 늘릴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방향선회는 국내 증권업계 구조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위탁매매 부문에서 경쟁 격화로 수수료 수입이 줄고 있기 때문에 IB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증권사 중심으로 업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