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용 < 고려대 경영대 교수 > 최근 히트친 방송광고가 있다. 어깨가 축 처진 40대 직장인의 아내가 남편의 팔을 흔들며 "외롭고 힘들어도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라고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다. 울적한 소식만 들리는 요즈음 이 광고는 보는 이의 눈가를 뜨겁게 한다. 지난 8월27일 국민건강보험발전위원회는 공청회를 열어 건강보험 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안했다. 그 중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지역가입자에 대해도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최선이나 현실적으로 이들의 소득 파악이 어려우므로 소득기준에 의한 보험료 부과는 중장기과제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직장가입자에게 부과되는 건보료의 상한제도는 유지하되 현행 연 2천5백만원의 건보료 상한을 적정선으로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 두 정책은 무관한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지역쪽 소득파악에 실패했음을 시인하면서 동시에 직장쪽 건보료 상한을 인상하겠다고 한 것은 지역쪽에서의 정책실패를 직장쪽 상한 인상으로 분칠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정부는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2002년 지역과 직장 건보의 재정을 통합했다. 당시 명분은 지역쪽의 소득파악률을 최대한 제고해 이들에 대하여도 소득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부과함으로써 직장쪽과 형평을 맞추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건발위는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이 어렵다는 현실론을 들어 이를 2010년 이후에야 실행될 중장기 정책과제로 슬그머니 돌려버린 것이다. 직장가입자들 보고 최소 6년은 억울하지만 참아라는 식이다. 재정통합 이후 2년간 직장쪽 건보료의 실질인상률은 지역쪽 그것의 3배에 달한다. 봉급생활자의 생활이 지역가입자에 비해 3배가 나아져서인가. 아니다. 그것은 건보료 명목인상률은 같았으나 그동안의 봉급인상분은 모조리 노출된 반면 지역가입자의 소득은 노출되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긴 직장쪽 흑자 8천5백억원이 지역쪽 적자 9천7백억원을 메우는 데 고스란히 투입됐다. 건발위도 미안한 생각은 들었나보다. 건보료 상한을 올리겠다는 발상은 대다수 직장인들의 건보료는 그대로 둔 채 고액 봉급자의 건보료만을 인상함으로써 그렇게 참아왔고 참아야 할 대다수 직장인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생각에서 상한을 올려야 한다면 인상률은 두자릿수로는 턱없이 모자랄 것이다. 추측컨대 건보료 상한이 현행 연 2천5백만원의 두배 또는 세배까지 인상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직장가입자들은 잘 알고 있다. 직장쪽 건보료 상한이 대폭 인상되면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모든 직장가입자들의 꿈은 자신이 속한 회사의 정상에 올라 최고봉급 소득자가 되는 것이다. 결국 최고봉급 소득자의 건보료 상한 인상은 모든 직장 가입자의 장래 소득을 그만큼 감소시킨 것에 다름 아니다. 직장쪽 건보료 상한 인상계획은 현재의 최고봉급자를 현실적 희생양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대다수의 직장가입자들도 잠재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갑근세와 건보료 등 각종 준조세부담이 커지면 직장인들의 근로의욕과 경제의욕이 냉각된다는 것은 재정학에 있어서 상식 중의 상식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근로와 경제의욕이 냉각되면 이들이 견인해 온 우리 경제의 동력이 순식간에 꺼질 수도 있다. 대다수 직장가입자들의 일시적 카타르시스를 위해 건보료의 상한을 인상한 것의 대가는 너무나 큰 것이다.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발위가 제안한 직장쪽 건보료 상한인상계획을 재고해야 할 당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라는 위로를 아내로부터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복지부와 공단의 그런 위로는 더 이상 필요없다는 얘기다. 건보료에 관한 한 직장가입자들은 참을 만큼 참아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