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에 사는 주부 이모씨(35)는 10살짜리 딸 아이가 영화를 보여달라고 보챌 때마다 인근에 있는 롯데백화점으로 데려간다. 굳이 복잡한 백화점을 고집하는 것은 영화만 보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꼭대기 층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씩 내려오면서 쇼핑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떨이'로 싸게 나온 옷들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지하 식품매장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는 것으로 나들이를 마무리한다. 인천에 사는 회사원 김모씨(48)가족은 토요일 저녁이면 장을 보고 영화관람을 한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코미디영화를,김씨 부부는 액션영화를 따로 관람한다. 김씨는 "예전에는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한정돼 있어 보고 싶은 영화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멀티플렉스가 아니었다면 아이들만 영화관에 들여보내는 일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멀티플렉스가 전국 곳곳에 확산되면서 가족 중심의 놀이공간으로 정착되고 있다. 멀티플렉스가 예술에서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터'로 탈바꿈하면서 관람문화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영화진흥위원회의 2002년 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영진위의 '영화관객 관람행동 조사'에 따르면 관객들은 영화를 고를때 출연배우(49.1%)나 감독(24.9%)보다 영화관 위치(60.4%)와 시설(58.5%)을 먼저 고려한다. 영화 관객들은 아무 곳이나 달려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웹 디자이너인 김혜수씨(26)는 집이 용인시 수지인 데도 영화는 메가박스에 가서 본다고 한다. 그는 "극장이 영화보다 더 중요하다. 시설이 깨끗하고 좌석도 편해야 하고 주변에 볼 게 많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멀티플렉스가 관람문화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영화 애호가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바뀌고 있다. 최초의 멀티플렉스인 강변CGV가 문을 연 98년과 지난해 4월을 비교한 결과 오전 11시 이전 조조관객 비율이 4%에서 10%로,밤10시 이후 심야관객은 5%에서 16%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5년만에 조조관객은 2.5배,심야관객은 3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영화관람은 주말이 제격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02년 조사에 따르면 관객들이 영화를 주로 보는 시간대는 평일 오후가 30.9%로 가장 많았다. 2001년 토요일 오후가 가장 많았던 것(41.1%)과 비교하면 멀티플렉스가 가져온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관객 특성에 따라 잘되는 영화가 다르다보니 '맞춤형 영화'가 생겨난 것도 특징이다. 백화점 위층에 자리잡은 롯데시네마는 아이를 데려오는 엄마들 덕분에 애니메이션 영화를 많이 상영하는 데 반해 CGV목동점은 이른바 '아줌마'들의 단체 관람이 잦아 애정영화가 잘 되는 편이다. 그런가 하면 20대들이 많이 찾는 강변CGV는 스릴러나 전쟁영화가 강세다. 올 1월 개관한 부산아시아드를 비롯해 대전 둔산,대구 수성,서울 금천의 프리머스시네마와 CGV구로,분당 오리점의 경우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많아 어린이영화나 가족영화 관람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