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제 < 대한송유관공사 CEO chohj@dopco.co.kr >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출입구마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축구경기가 끝났나 싶더니 순식간에 그 일대가 인파로 가득찬다. 대형 할인마트,주차장으로 들고나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다. 예술의전당,공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부순환로는 사람과 차들로 북새통이 된다. 서울은 만원이다. 서울은 항상 사람과 차들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표정은 늘 초조하다. 항상 바쁘고 짜증난 얼굴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여유없이 살게 하는가. 그런 풍경을 접할 때마다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저들은 왜 사는가. 나는 왜 사는가. 새로 부임하는 곳이면 나는 직원들에게 어김없이 묻는다. "자넨 왜 사나?"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어감 조절을 잘못하면 힐책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을 당황하게 할 수도 있다. 존재의 의미 즉 '레종 데트르(raison d'etre)'에 관한 실존철학적 물음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직원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살기 위해 살지요." "먹기 위해 살지요." "행복하기 위해 살지요." "부모님의 실수로 태어나 별 수 없이 살지요." 등…. "왜 사느냐?"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이 돼야지' 그렇게 생각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세계적인 사람이 돼야지'라는 희망을 품었던 학창시절의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린시절 무척 꿈이 많았던 소년이었나 보다. 성장해오면서 책을 통해 풍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역사적인 인물들을 만났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세계적으로 훌륭한 인물이 되겠다는 꿈을 꾸며 지냈던 학창시절이 기억난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더해가면서 꿈은 현실에 가까워지게 마련인지 세계적일 수 없다면 아시아에서라도,그것도 안 되면 국내에서라도,그것도 어려우면 우리 지역에서라도 후세를 위해 무언가 남겨놓고 가겠다고 다짐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건 정신적인 것이 됐든 우리 후배와 후손들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무엇이든 남겨놓고 가겠다는 각오로 말이다. 그리하여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우리 집안에서만이라도 언제나 그 각오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우리 후배들에게 왜 사는지를 답하면서 오래 오래 기억될 값진 무언가를 남겨 놓으려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