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절차에 따라 진행되던 통합거래소 이사장 선정이 청와대의 제동으로 중도에 백지화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면서 현 정부의 인사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가 확산되고 있다. 후보자 공개모집과 민간위원들에 의한 추천 등 '자율'을 강조해온 인사방식에 청와대 스스로 '구멍'을 낸 셈이 됐기 때문이다. 경기부양.기업.부동산정책 등을 놓고 정부와 여당,청와대간에 잇단 불협화음을 빚으면서 경제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데 이어 인사문제에서까지 잡음을 증폭시킨 데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청와대 '다시 하라' 7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통합거래소 이사장 후보추천위원회가 3명의 후보를 압축한 것은 지난 23일께다. 10여명의 후보를 놓고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1순위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2순위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3순위 강영주 증권거래소 이사장을 뽑았다. 당초 정치권의 지원을 업고 유력한 후보로 거명됐던 한이헌 전 경제수석은 3배수 후보 추천에서 탈락했다. 비공식 보고를 통해 3명의 후보 명단을 받아든 청와대는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한 전 수석이 탈락한 것도 그렇지만,3명의 후보 모두 재경부 출신이었기 때문. 관료들의 금융계 인사 독식을 차단하기 위해 고안한 공모시스템마저 '허점'을 드러냈다고 판단한 청와대는 '원점 재(再)공모' 지침을 내렸다. 지침이 내려진 직후 정 전 총재를 비롯해 이 사장 등은 잇따라 후보에서 사퇴했다. 통합거래소 이사장 선정엔 형식상 청와대가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백지화 시나리오'에 따라 후보들이 자진 사퇴 형식으로 줄줄이 물러난 것이다. ◆충격에 빠진 재경부 통합거래소 이사장 추천이 청와대로부터 '불가(不可) 판정'을 받고 백지화되자 재경부는 몹시 긴장하는 분위기다. 재경부 관계자는 "민간위원들이 객관적인 심사를 통해 뽑은 3명의 후보가 공교롭게도 모두 재경부 출신이란 점 때문에 청와대가 오해한 것 같다"면서도 "청와대가 공모인사에 제동을 건 것은 뜻밖"이라며 당혹스러워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일로 청와대가 재경부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일부 관계자들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후보를 선정했다고 하더라도 3명 모두를 재경부 출신으로 채운 것은 결과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이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실무진과 추천위의 단견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어쨌든 재경부는 이번 인사마찰로 앞으로 예정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KAMCO) 등의 사장 인선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후보 선정이 진행 중인 이들 기관의 신임 사장으로 모두 재경부 출신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될지 '안개 속' 앞으로 통합거래소 이사장이 어떤 절차로 어떤 인물이 뽑힐지는 예측불허 상태다. 이헌재 부총리는 "기존의 후보추천위원회가 재추천하는 수고를 해줄지,설립추진위원회가 차선의 방법을 찾을지 이제부터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보추천위를 통한 공모를 대체할 만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대안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추천위 방식이 다시 시도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그 경우 후보추천위는 재구성될 공산이 크다. 자신들이 선정한 3명의 후보가 사실상 모두 거부됐기 때문에 추천위 스스로 해체할 움직임마저 감지되고 있다. 추천위가 새로 구성되더라도 이사장 후보를 찾는 작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 이번 사태로 재경부 출신은 1순위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커진 데다 민간쪽에서 마땅한 후보들이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응모한 후보들 중 80% 정도가 모두 재경부 출신이었고,유력한 민간후보는 없었다"는 게 한 추천위원의 설명이다. 차병석·김용준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