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세상 남자들이 다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순이(예지원)의 대사는 네 부자(父子)를 혼란에 빠뜨린다.


순이는 아버지(장선우)의 새 여자이니까 삼형제의 새어머니다.


그러나 '후까시'(김석훈) '개코'(선우) '뭐시기'(정재영)로 불리는 삼형제는 젊고 예쁜 순이를 연애 상대로 본다.


김수현 감독의 데뷔작 '귀여워'의 주인공들은 이처럼 상식을 초월해 존재한다.


이들이 사는 곳은 서울 복판의 황학동 철거촌이다.


이들은 새 집을 구하지 못한 채 철거되고 있는 건물들과 명운을 함께해야 할 상황이다.


말하자면 주인공들은 '철거돼야 할 인생'이며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현실을 은유한 캐릭터들이다.


인물들의 무질서와 혼돈은 가족관계에서 암시된다.


아버지는 한물간 박수 무당이며 세 아들은 아버지가 한창 때 여성 고객들에게 뿌린 씨앗의 결실이다.


형제들의 서열은 아버지를 찾아온 순서로 정해졌다.


관습과 전통을 벗어난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관객들의 예상을 철저히 배반한다.


카메라는 철거민들의 분노와 아픔을 추적하지 않고 낙망과 체념으로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을 포착한다.


순이가 사창가에 팔려가도,건달 '뭐시기'가 살인을 저질러도,철거촌 아이들이 집에 불을 질러도 등장 인물들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것은 등장 인물들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환상은 달콤한 세상에 대한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힘겨운 현실을 잊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철거촌에 사는 등장 인물들은 도시의 섬 속에 유폐된 죄수들이나 다름없다.


순이와 아버지의 결혼식에 아무도 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흘러간 샹송의 애조띤 음색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개연성 없는 반전은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 곤란해 보인다.


종반부 순이가 처녀라는 암시는 환상적인 상황의 연장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감상적인 결말이라는 느낌이 든다.


26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