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재계의 의견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1일 '마지노안'이라고 내놓은 재계 수정안도 철저히 외면당했다.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 4단체는 법안 통과 직후 낸 성명서에서 "남은 국회 입법 과정에서 기업의 투자가 크게 진작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지만 오는 25일 본회의를 앞두고 법안이 수정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이수희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센터 소장은 "11일 재계가 내놓은 최종안은 나름대로 충분한 명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전경련의 최종안은 △출자총액제한 제도 적용대상을 17대 그룹에서 5대 그룹으로 축소하고 △금융 계열사 의결권 제한을 15%가 아닌 20%까지만 제한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전경련이 출자규제를 5대 그룹으로만 국한시키자는 안을 내놓은 것은 이들 그룹만 규제해도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정책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5대 그룹이 17대 그룹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5%,계열사 수는 49%에 이른다. 금융 계열사 의결권을 20%까지만 제한하자는 안은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가 지난 9월 열린우리당 단독으로 개정안을 처리해 전체회의에 넘기면서 '부대의견'으로 첨부한 안이었다. 재계는 그 동안 전경련의 강신호 회장,현명관 부회장 등이 앞장서 국회의원들을 설득해왔다. 의원들은 기업의 현실을 이해한다면서도 법안에 재계의 의견을 반영해주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일부 의원들로부터는 "기업이 이익을 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면박을 들었을 뿐이다. 전경련은 18일 기업도시 관련 특별법안에 대한 보도자료를 냈다. 이대로는 기업도시가 무의미하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의원입법안은 정부안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기업도시특별법을 '재벌특혜법'이라며 비난하는 시민단체들의 근거없는 비판에 지나치게 민감한 탓에 법안 자체가 훼손됐다는 게 재계의 판단이다. 비정규직 입법도 마찬가지다. 재계는 국무회의를 통과한 입법안이 기업에 과중한 인건비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노동계가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국회 처리 과정에서 친노 성향이 더 강해질 것을 경계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투자 의욕을 꺾는 것이 개혁이라면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다"며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서야 어떻게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느냐"고 말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