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 름 ‥ 박진숙 <작가정신 대표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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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숙 작가정신 대표ㆍ시인 jakka@unitel.co.kr >
"진숙아."
선생님이 우리 쪽을 바라보면서 나를 부르셨다.
"네" 하고 선생님께 가려는데 옆에서 나보다 먼저 대답하고 뛰어가는 석진숙.
아,그렇지.
쟤도 진숙이지.
여고 때 진숙이가 꽤 많았다.
김진숙,이진숙,석진숙,박진숙.
흔한 성까지는 그래도 덜 서운한데 석씨까지 진숙이다.
이 이름이 그렇게 좋을까.
우리를 부른 선생님은 그날 나란히 걸어오는 두 진숙이를 보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입가에 스물스물 배어나온 선생님의 미소를 보고는 석진숙도 나도 그만 웃고 말았다.
하지만 속마음까지야 어찌 웃었겠는가.
사춘기 때 아이들은 우주에서 자기만이 특별하다는 존재감에 꽉 차 있다.
이 존재감이 아이들을 때로는 힘들게 한다.
그런데 이름이 흔해서 특별하지 않은 진숙이들은 피차간에 성을 대동하지 않고서야 구분되지 않았으니 제 이름을 사랑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석진숙과 나는 또 친해서 어울려 다녔고 그 애가 이민을 가는 바람에 진숙이는 겨우 하나가 줄었다.
대학 때는 이름에 대한 낭패감을 잊고 지냈다.
또 다른 진숙이가 없었으니까.
등단을 하고 보니 이번엔 성마저 같은 박진숙이 계셨다.
지금은 드라마를 쓰고 계신 분이다.
소설을 쓰셨으니 우리는 이번엔 분과로 구분됐다.
그런 구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구별은 아니어서 소설집이 내게로 배달되는 일들이 생겼다.
소설 청탁도 왔다.
드디어는 잘 알려진 소설가로부터 전화도 받았다.
그래서 그분과 나는 통성명을 하게 됐다. 그분은 '참 眞',나는 '보배 珍'이었다.
비로소 보배의 참 의의를 찾은 것이다.
그 뒤로 내 이름의 중간 자인 보배 진은 무슨 이정표라도 되는 양,이름 석자를 대는 때마다 별도로 쓰이곤 했다.
문인주소록에는 그분과 나 외에도 고참인 진숙이 계셨다.
하지만 성(性)도 다르고 성(姓)도 달랐다.
성까지 같은 경우를 겪은 다음이라 또 다른 진숙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출판을 하게 되면서 또 하나의 진숙을 발견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출판계의 원로이신 데다 역시 성(性)도 다르고 성(姓)도 달랐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름은 진숙이 아니었다고 한다.
보다 예쁜 이름이었는데 주위의 영향력 있는 어느 인사가 기생 이름 같다고 한 것이 화근이 돼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가 단박에 지어 붙여준 이름이 진숙이다.
그러니 그저 감사할밖에.
박진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잡지를 펼쳐들다가 문인으로 등재된 제3의 박진숙을 발견했다.
이번엔 웃음이 났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 박진숙은 '진'자를 무슨 '진'자로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