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외환시장 딜러들은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겼던 1천80원선에 이어 1천70원선마저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허탈한 표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선·전자업종 대기업들에 이어 수출 중소기업,금융회사 등 시장 참가자들이 모두 팔자고 나선 '매수자 없는 시장'에서 어떻게 손써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엔·달러 환율까지 1백4엔선이 무너져,서울 외환시장은 날개 없는 추락을 연출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단 하나,유일한 매수세력인 '외환당국'이 나서는 시기는 언제일까로 모아지고 있다. ◆날개 없는 추락 이날 오전 국제금융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1백3엔대로 추락한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원40전 떨어진 1천78원에 개장됐다. 이때부터 '혹시나' 하던 달러 대기매물이 쏟아지며 오전 중 1천68원대까지 하락했다. 시장에선 이날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필요하면 행동하겠다"는 원론적인 경고 발언보다 "환율을 정책지표로 쓰지는 않겠다"고 언급한 데 더 주목하는 듯했다. 오전에 이미 10원 넘는 낙폭을 기록한 터라 오후 들어 외환딜러들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며칠동안 급락장에서 폐장 직전 쏟아지는 매물을 견디지 못하고 환율이 주저앉아 끝까지 긴장을 풀수 없었지만 오늘은 장초반에 이미 대세가 결정돼 갑작스런 시장개입이 나오지 않는 한 별다른 변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후 들어 낙폭과대에 따른 역외매수세가 유입되며 한때 1천70원선을 회복한 환율은 장 막판 또다시 손절매성 매도가 쏟아지며 폐장 직전 1천63원80전까지 내려갔다. 종가는 1천65원40전.하루 낙폭은 14개월만에 최대인 16원. ◆매도자밖에 없는 시장 구길모 외환은행 과장은 "주초만 해도 특정 대기업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얘기할 수 있었지만 어제(17일)부터는 누가 판다고 얘기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달러 팔자주문이 주로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질문에 대한 딜러들의 공통된 대답이다. 지난주 환율급락을 부채질한 것은 특정 조선업체이며 전자업체 매물도 간간이 나왔다는 얘기가 외환시장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그 물량이 대부분 소화된 17일부터는 달러 약세가 대세로 굳어지자 너나 없이 달러를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금융회사나 역외세력이 당국의 개입을 기대하며 저가에 매수했다 되파는 손절매 물량과 대금결제를 위해 달러를 사야 하는 수입업체들의 매수가 거래량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매물은 대부분 소화된 것으로 안다. 지금 나오고 있는 매물은 시장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까지 갈까 시장 관계자들은 이제 환율 전망치를 내놓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최근 며칠새 지지선이라 여겼던 1천1백30원,1천1백원,1천80원이 속절없이 무너진 시장에서 향후 환율을 전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심 1천50원대를 지지선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은 관계자는 "시장이 1천50원대를 예상하고 있지만 이렇게 굴곡이 심한 시장에서는 항상 그 이하로 떨어졌다 반등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주호 HSBC 이사도 "1천50원대에서 일단 지지를 받겠지만 예상하기 힘든 장"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마저도 엔·달러환율 상승반전이나 정부개입 등 상황 변화가 없으면 힘들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 예상이다. 일각에서는 단기 낙폭이 큰 만큼 본격적인 시장개입도 가까워진 것 아니냐며 조만간 급등을 예고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