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뒷 산 ‥ 박진숙 <작가정신 대표ㆍ시인 >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어느 때부터인가 주말에는 뒷산에 오르게 됐다.
뒷산은 내게 낮은 산도 제법 골이 깊다는 것을 가르쳐준 산이다.
간혹 잠시 길을 잃을 만큼 그때 그때 나비며 풀꽃이며 건너편 인수봉까지 볼 것들도 많아 그간에 든 정이 만만치 않다.
뒷산에 들어서면 마음이 위무되는 것을 느낀다.
적당히 구비진 길도 걷기 좋아서 이 산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싶을 때도 있다.
걷다보면 어느새 머릿속의 이런 저런 일들이 무리없이 정리되기도 하는데 그 또한 뒷산의 매력이다.
지난 주말 나는 뒷산에 올랐다.
3주 만이었다.
그사이 11월이 됐고 입동이 코 앞이었다.
단풍은 어떻게 들었는지 길은 얼마나 깊어졌는지 나무 사이를 부는 바람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가보고 싶었지만 번번이 다른 일이 생겨 가지 못했다.
그래서 더 즐거운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매캐하니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났다.
기분이 좋았다.
언제나처럼 정경부인 허씨 묘 아랫길을 지나다 얕은 풀숲에 나른하게 엎드려 있는 개를 보았다.
순하고 귀엽게 생긴 개였다.
아무 생각 없이 혀를 차 아는 체를 했다.
개는 꼬리를 흔들며 풀숲에서 길가로 나와 앉았다.
정작 먼저 아는 체를 한 나는 머리도 쓰다듬어 주지 않고 산으로 난 길을 향해 접어들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개가 요란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길가에 그 개가 모로 누워있고 자동차가 한 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에 다리를 밟혔구나!
개는 계속 울어댔다.
나는 사라지는 자동차를 바라보다가 운전자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산길로 들어섰다.
산길은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게 낙엽으로 뒤덮여 있었다.
오후 햇살은 나지막하니 비쳐들어 따뜻했지만 나는 허를 찔린 것처럼 속으로 몹시 놀라 있었다.
내가 불러내지 않았다면 개는 풀숲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을 것이다.
개를 그냥 놔뒀어야 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으로 끝나야 했다.
낙엽을 밟는 내 발자국 소리가 인적 없는 산길을 메우는 데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가만히 두었으면 좋았을 일을 덧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누구에겐가 무심코 한 말과 행동이,별 뜻 없이 던진 눈빛이 피해를 주고 오해를 불렀을 수도 있다.
인과를 생각했다.
악연을 짓지 않으려면 말과 행동에 신중 또 신중을 기해도 모자라지 않겠는가.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호감을 가지고 한 행동이 나쁜 결과를 부르는 원인이 되는 것을 어떻게 미리 알고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