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칼끝에 꽂힌 어긋난 사랑 '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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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기훈(한석규)은 소풍을 나선 듯 드라이브를 즐긴다.
목청을 돋워 스피커에서 나오는 고음의 오페라 아리아를 흥겹게 따라 부른다.
그러나 다음 순간 피투성이 시체가 나뒹구는 살인 현장이 이어지고 그 자리에 기훈이 있다.
그의 직업은 형사이며 이전의 드라이브는 살인 현장으로 가는 길이다.
양립하기 어려운 정서의 장면들이 연결돼 있다.
수사관이 여유롭게 사탕을 씹으며 사체를 감식하는가 하면 관능적인 섹스 다음에는 건조한 수사 장면이 이어진다.
기훈이 정부(이은주)와 섹스한 뒤 침대에서 돌아눕는 순간 아내(엄지원)가 곁에 있다.
그러나 대립적인 상황과 정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하나로 수렴된다.
저마다 다른 개성의 등장인물들도 종반부에는 사실상 동일한 캐릭터들이다.
형사와 살인범은 똑같이 욕정의 노예이며 정숙한 듯한 기훈의 아내와 요녀 같은 정부도 나란히 불륜에 개입돼 있다.
오히려 정부의 애정이 더욱 진실하게 비쳐진다.
변혁 감독의 '주홍글씨'는 뛰어난 편집미학으로 유혹과 욕망의 본질을 그려냈다.
유혹은 무차별적이며 당사자들은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든다.
이야기는 기훈의 불륜 행각과 살인사건 용의자(성현아)의 치정관계 등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된다.
기훈은 두 이야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중심 테마는 치정과 유혹이며 살인 사건은 부수적 장치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제목에서 유래된 '주홍글씨'는 금기의 사랑에 찍힌 낙인을 뜻한다.
때문에 불륜의 당사자들에게는 처벌이 예정돼 있다.
그러나 모든 등장인물이 타락한 만큼 심판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범이 면죄부를 받는 게 그 증거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자동차 트렁크에 뛰어든 남녀의 모습이다.
트렁크는 외부세계와 차단된 완벽한 밀애의 공간이지만 두 연인은 이 곳에서 스스로 통제력을 상실한 채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욕정에 이끌리는 삶이란 피투성이로 사는 삶이며 당사자들이 추구하는 세상도 트렁크처럼 갇힌 세계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불륜은 격정을 일으키지만 결코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눈물의 정사'신을 소화해 낸 이은주는 섹스에서 관능보다 정서를 표현했다.
한석규는 야심만만하고 이기적인 인물을 능란하게 연기했다.
29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