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시인 박진숙(48)씨가 세번째 시집 '혜초일기'(문학세계사)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1천3백년전 신라의 젊은이 혜초가 삶의 근원과 진리를 찾아 떠났던 서역 길을 따라가며 그린 마음의 행로가 담겨 있다. 시집속 작품의 대부분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간명한 언어로 보여준다. '나는/태어나지도 않았고/살지도 않았다/따라서 죽는다는 것도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태어나서/살았으며 그리고 죽는다'('금강경에 부쳐' 전문)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 속에서 머나먼 순례의 첫걸음을 내디뎠던 시인은 순례의 마지막에서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간다. 고통과 번뇌로 가득찬 순례에 지친 시인은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어머니가 있기 때문에/어머니를 찢고 나오기 때문에…그 힘으로 죽을 때까지 살기 때문에/모든 생명의 처음이자 끝인/어머니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에'('살아야 하는 이유' 중) 문학평론가 이남호씨(고려대 교수)는 "세상과 삶의 이치에 대한 '혜초일기'의 시적 사유들은 가벼운 아포리즘들이 범접할 수 없는 진정성에 닿아 있다. 거기에는 칼끝과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 '혜초일기'는 깨달음의 노래라기보다 번뇌의 노래이다"라고 평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