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초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가족소유 기업인 소시지 그룹의 상속자 주시 살로노야(27)는 제한속도 25마일 도로에서 시속 50마일로 차를 몰다 경찰에 적발됐다.


이때 그가 뗀 "딱지"의 벌금은 무려 21만6천달러(약 2억5천만원)였다.


경찰은 그의 연간 소득이 1천3백만달러(약 1백50억원)라는 점을 들어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다.


교통범칙금도 소득세 처럼 위반자의 소득에 비례해 물리는 핀란드의 독특한 벌금 제도에 따른 것이다.


가진 자는 그만큼 사회에 많이 기여해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유럽식 복지개념과 평등사상이 강한 사회민주주의 전통의 핀란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놀라운 건 이런 '평등지향적' 풍토에서도 세계 제일의 정보통신 회사인 노키아 같은 기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분배와 평등보다는 경쟁과 차별을 먹고 사는 기업이 어떻게 핀란드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복지국가의 대표격인 스웨덴에 인구비례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기업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나라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이지만 국영 기업은 거의 없다.


일반 제조업은 물론 병원 학교 철도 등 공공성이 강한 부문에서 조차 민간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복지왕국 북유럽 국가들을 방문하기에 앞서 필자는 몇가지 선입견과 함께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국민의 복지 유지를 위해선 스웨덴 핀란드 등의 경제는 정부에 의해 전적으로 운용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국가들에서 시장은 무슨 역할을 맡고 있을까.


경제발전에 있어 기업가의 혁신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판단했던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혁신이 대부분 대기업에서 일어나고,이에 따른 대기업의 확대는 대기업에 대한 반감을 불러와 민주주의에 의해 자본주의가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오랜 민주주의의 전통을 지닌 이 북유럽 국가들에서 과연 슘페터의 예언은 적중하고 있는가.


이러한 선입견과 의문들은 첫 방문국인 핀란드에서부터 조금씩 깨지고 풀리기 시작했다.


핀란드는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정부기관의 이름조차 '경쟁청'(Finnish Competition Authority)이라 불렀다.


그만큼 경쟁을 강조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이 경쟁청은 민간 기업 뿐 아니라 심지어 공공부문의 경쟁상태까지도 점검한다.


이들에게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키아가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하더라도 경쟁적 시장구조를 갖고 있다면 문제삼지 않는다."(마르티 비르타넨 경쟁청 부국장).그렇다고 대기업의 독점적 기업활동을 방치하는 건 아니다.


시장 효율성이 유지될 수 있게끔 실질 경쟁이 벌어지도록 정책을 추진한다.


스웨덴도 발렌베리 가문의 지주회사에 의한 대기업 소유집중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이 가문은 5대를 이어가며 에릭슨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시에 많은 경쟁력있는 기업들을 길러냄으로써 스웨덴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에서 정부는 무엇인가.


우선 이들은 복지국가를 표방하므로 높은 재정수요를 위해 많은 세금을 걷어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주된 세원(稅源)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법인세가 아니라 개인소득세란 점이 특이하다.


국민들은 소득의 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


이것도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이룬 것임은 물론이다.


정부는 이 재정수입을 통해 국민들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한다.


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으로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기본적 생활을 보장한다.


복지 이외에 정부가 큰 역할을 담당하는 부문은 교육이다.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시행할 정도로 교육을 정부가 책임진다.


스웨덴과 핀란드 네덜란드는 정보기술(IT)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정부가 이 산업을 특별히 선별 지원한 것은 아니다.


이들 국가에 차별적 산업정책은 없다.


단지 국가경쟁력을 위해 교육과 R&D에 자원을 집중 배분하는 등 기업 경영활동을 간접 지원할 뿐이다.


자본주의가 노동자 계급에 의해 멸망하리라는 칼 마르크스의 예언이 오류였던 것처럼,자본주의가 대기업의 확대에 따라 민주주의에 의해 멸망하리라는 슘페터의 예언도 유럽 강소국들의 경험에 의해 부인되고 있는 셈이다.


헬싱키·스톡홀름=이영선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