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한 한국수입업협회 회장 shk@soyee.co.kr > 얼마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무대인 이탈리아 베로나를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수입시장을 소개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언제나 해외출장 때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손가방 하나와 양복이 구겨지지 않도록 큰 가방 하나를 따로 꾸려서 비행기 짐 칸에 부치곤 했다. 이번엔 일정이 짧아 손가방 하나만 가지고 가려다가 현지 도착 다음날의 공식행사 스케줄을 생각해 양복 2벌과 와이셔츠,넥타이 등을 담은 짐가방을 챙겼다. 인천공항에서 짐을 부치면서부터 가방분실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린 듯 신경이 쓰였다. 특히 환승 때는 짐칸에 실은 옷 가방이 옮겨 실리지 못하든지 엉뚱한 곳으로 가버려 곤경에 처했던 몇번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출장도 파리에서 환승해야 하는 터라 인천과 파리공항에서 특별히 부탁해 확인까지 했건만 막상 베로나공항에 도착했을 때 짐가방이 보이질 않았다. 당장 내일 아침 행사에 참석할 복장이 걱정됐다. 늦은 시간이라 어디서 구입할 수도 없었다. '머피의 법칙'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출발 전부터 가졌던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차라리 신경쓰거나 부탁하지 않았더라면 잘 도착했을텐데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공항분실센터에 신고했더니 짐을 추적해서 다음날까지 호텔로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다음날 그 행사에 참석하는 한국인 몇 분이 같은 호텔에 묵게 됐다. 내 딱한(?) 사정을 들은 그분들은 각자 준비해온 옷 중에서 사이즈가 맞을 만한 양복과 넥타이,와이셔츠 등을 선뜻 내주었다. 옷들이 조각 맞추기를 한듯 제 각각이었지만 그분들의 마음씀씀이가 좋아서였는지 정작 내가 가지고 간 양복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옷 때문에 결례하는건 아닌지,남의 나라 행사를 망치게 하는건 아닌지 하는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다행히 행사도 잘 치렀다. 극적인 상황에서 이런 작은 도움이 주는 감동이란…. 그간 느꼈던 불안감따위는 이 사소하고도 소박한 감동에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행사를 마치고 호텔방에 돌아와보니 잃어버린 짐가방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또 한번의 작은 행복을 만끽하면서 평소에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사소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언가를 사랑하려면 그것이 사라질 수도 있음을 깨달으면 된다'라는 케스터 톤의 말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조그마한 것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