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정책과제'를 주제로 한국금융연구원이 17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는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의 철학과 통화ㆍ재정 정책 전반을 놓고 날선 비판들이 쏟아졌다. 최광 국회예산정책처 처장은 "민주주의 정치 논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압도해 한국 경제는 쇠퇴의 길로 방향타가 맞춰져 있다"고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그동안 구체적 경제정책 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던 정운찬 서울대 총장도 이날은 작심한 듯 현 정부 들어 세 차례 단행된 콜금리 인하조치에 대해 "역기능이 순기능을 압도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참여정부는 구름에 싸인 달과 같다"며 "구름이 걷히면 그 진가를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맞섰다. ◆"반(反)시장 정책에 경제 질식" 이날 학술대회에서 쏟아진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의 요지는 '시장경제 원칙의 실종'으로 요약된다. 최광 처장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최근 정책당국은 반시장적 정책을 쏟아내면서도 오히려 반시장적인 게 뭐가 있느냐고 되묻고 있다"며 "반시장적 정책의 팽배가 한국 경제를 질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민주주의 정치논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를 압도하면서 한국 경제가 번창의 길보다는 쇠퇴의 길로 방향타가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예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수요공급 원리를 무시한 부동산 정책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존치 등을 꼽았다. 최 처장은 "사유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시장경제주의자'와 시장경제를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공익을 위해 시장경제의 기본틀을 깨는 조치가 가능하다고 믿는 '시장경제론자'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경제주의자'"라고 언급,노 대통령과 이헌재 부총리가 이끄는 현 경제팀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앞서 첫 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이정우 위원장은 "시장경제에도 미국형·유럽형·일본형 등 여러 유형이 있다"고 전제한 뒤,"참여정부에 대해 반시장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시야가 너무 좁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참여정부는 과거 정부들이 어렵고 귀찮아서 시도하지 않았던 개혁 과제들을 하나하나 시도하고 있다"며 "개혁은 원래 비난받기 쉬우며,그 열매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열리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통화정책 역기능이 순기능 압도" 현 정부 출범 이후 시행된 통화금융정책과 재정정책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금융정책의 평가와 정책 과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은행의 경기팽창적인 통화신용정책은 역기능이 순기능을 압도했다"며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작년 5월,7월과 올 8월 이뤄진 콜금리 인하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물가부담에도 불구하고 경기활성화를 위해 콜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경기부양 효과보다는 주택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급증 등의 역기능만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불거졌던 신용카드사 부실 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정 총장은 "적자생존의 원리를 부정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신용카드 위기가 처음 표면화됐을 때 부실 카드사를 과감하게 정리했어야 함에도 불구,카드채 만기연장이라는 미봉책으로 문제를 봉합해버렸다는 지적이다. 정 총장은 또 "우리 금융지주회사는 현행 체제에서도 경영진을 활용하기에 따라 민영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산업자본이나 외국계에 넘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민영화 일정을 연기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대 은행을 재벌의 영향력 하에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외국자본에 넘기는 것도 마땅치 않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재정분야 주제발표를 맡은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참여정부는 재정을 단기적 경기부양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재정건전성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며 "선진국에 비해 국가채무 비중이 낮다는 사실이 관습적인 적자재정을 부추기는 이유가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 교수는 특히 "예산수요 증가와 성장잠재력 저하,고령화에 따른 세수기반 취약 등을 고려할 때 국가 채무의 증가추세는 매우 우려할 만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